<믿음의 의미를 오해하면 안됩니다>_11/5/2023
Author
관리자
Date
2023-11-04 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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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가장 많이 듣는 내용 중의 하나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입니다. 이 말씀은 그 내용을 잘 모르는 사람한테도 대단히 매력적인 말씀입니다. 행위라는 부담이 없이 믿음이라는 추상적 행위(또는 생각)만 있으면 구원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더 위험한 오해도 없습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먼저 신뢰(trust)가 기본입니다. 예수님을 신뢰하는 것이 믿음의 첫 걸음입니다. 그분이 하신 일, 해주신 말씀, 그분의 존재를 성경에 나오는대로 신뢰하는 것입니다. 신뢰가 첫째라면 신뢰에 당연히 따라오는 것은 순종입니다. 신뢰의 핵심 내용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요, 우리의 유일한 구원자라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믿는 사람은 그분 앞에 엎드리고 그분의 뜻에 순종하게 됩니다. 순종이 따라오지 않는 믿음은 알맹이가 없는 믿음입니다. 야고보 사도는 이런 믿음을 ‘죽은 믿음’이라고 불렀습니다. 죽은 믿음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충분히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천국이 아니라 지옥입니다.
믿음에서 빠지면 안되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회개입니다. 믿음의 내용을 믿는 사람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진 존재인지를 발견하고, 자신의 전 존재를 부정하며 죄인됨을 가슴아파하며 회개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고백한 ‘나는 죄인의 괴수다, 내가 한 것은 죄지은 것 밖에 없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회개의 핵심은 진정성입니다. 회개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죄를 용서해주시기 때문에 똑같은 죄를 거듭 반복해도 회개만 하면 바로 용서해주시니까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죄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우리의 일상 가운데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예의에 어긋난 일을 하면 ‘쏘리(sorry)’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과가 가벼운 것이라면 우리는 그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냥 불편한 순간을 모면해보겠다는 편의주의적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회개를 반복했을 때의 결과는 같은 죄를 계속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애초부터 회개할 마음이 없었다고 봐야 맞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하고’를 반복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진정한 믿음이 있다면 회개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회개가 먼저 있어야 믿음이 생긴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순서보다 중요한 것은 회개와 믿음은 거의 동시에 일어나고 서로 필수적불가결하다는 것입니다. 회개 없이는 믿음을 가질 수 없고 믿음이 없으면 회개가 불가능합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가벼운 회개는 반복되는 죄를 낳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점점 무뎌져서 화인맞은 양심이 됩니다. 잘못하면 더 이상 회개의 기회마저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에서가 눈물로 후회 했지만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12:17).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회개는 우리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나중으로 미루다가는 다시는 회개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신뢰, 순종, 회개도 더불어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믿음에서 빠지면 안되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회개입니다. 믿음의 내용을 믿는 사람은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에게서 멀리 떨어진 존재인지를 발견하고, 자신의 전 존재를 부정하며 죄인됨을 가슴아파하며 회개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도바울이 고백한 ‘나는 죄인의 괴수다, 내가 한 것은 죄지은 것 밖에 없다’는 말의 의미입니다. 회개의 핵심은 진정성입니다. 회개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죄를 용서해주시기 때문에 똑같은 죄를 거듭 반복해도 회개만 하면 바로 용서해주시니까 큰 문제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죄에 대한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우리의 일상 가운데 남에게 피해를 주거나 예의에 어긋난 일을 하면 ‘쏘리(sorry)’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런 사과가 가벼운 것이라면 우리는 그 사과의 진정성을 의심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냥 불편한 순간을 모면해보겠다는 편의주의적 행동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해서도 이런 식으로 회개를 반복했을 때의 결과는 같은 죄를 계속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애초부터 회개할 마음이 없었다고 봐야 맞을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하고’를 반복하는 것으로 이해하면 안됩니다. 진정한 믿음이 있다면 회개는 자연스럽게 따라옵니다. 회개가 먼저 있어야 믿음이 생긴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순서보다 중요한 것은 회개와 믿음은 거의 동시에 일어나고 서로 필수적불가결하다는 것입니다. 회개 없이는 믿음을 가질 수 없고 믿음이 없으면 회개가 불가능합니다. 물론 이 모든 과정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가벼운 회개는 반복되는 죄를 낳습니다. 그러면 마음이 점점 무뎌져서 화인맞은 양심이 됩니다. 잘못하면 더 이상 회개의 기회마저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히브리서에 보면 에서가 눈물로 후회 했지만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는 말씀이 있습니다(12:17). 이보다 더 불행한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회개는 우리의 하루를 마무리하는 가장 중요한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나중으로 미루다가는 다시는 회개할 기회가 없을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을 들을 때마다 그 안에 들어있는 신뢰, 순종, 회개도 더불어 기억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