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 10/11/2020
Author
Young Min Chung
Date
2020-10-10 13:41
Views
504
“힘내, 가을이다, 사랑해”
모처럼 한국 신문에 기독교 신자 한 분에 대해서 온전히 긍정적인 기사가 나왔습니다. 지난 9월 30일 94세를 일기로 소천하신 한국 최고령 현역 여의사 한원주 닥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분은 부모님이 모두 3.1독립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항일지사였습니다. 뒤늦게 의학을 공부한 아버지가 병원을 개원해서 번 많은 돈을 사회에 환원했다고 합니다. 돌아가실 때 여섯 자매에게는 살던 집 한 채만 남기고, 대신 공부를 충분히 하도록 지원했습니다. 형제 중 셋째 딸인 고인은 경성의학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산부인과 전문의를 취득한 다음 남편과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에서 내과 전문의 자격을 획득하고 귀국했습니다. 여자 산부인과 의사가 드물던 시기라 병원이 아주 잘되어 돈을 많이 벌었는데, 물리학자였던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제2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내과 전문의 자격이 있었기 때문에 매주 1회 무료 진료를 시작했고 1988년에는 자신의 개인 의원을 폐업하고 아예 무료 진료를 위한 의료선교의원을 개원해서 어려운 환자들을 돌보았다고 합니다. 주말에는 시골 교회와 복지관을 돌면서 외국인 근로자, 노숙인, 다문화가정 가족들을 섬겼고, 휴가철에는 매년 선교지에 다니면서 의료선교 활동이 힘썼다고 합니다.
본인은 본래 약골인데다 부모님으로부터 고혈압과 위.십이지장궤양을 물려받았지만 봉사활동을 하면서 ‘바쁘고 기쁘게’ 살다보니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고 합니다. ‘병원을 운영할 땐 환자가 치료비를 낼 수 있을까를 늘 염려했는데, 그런 걱정 없이 무료 진료를 하고 나면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릅니다. 넘치는 재물보다 마음의 기쁨이 한량 없으니 나로선 손해 본 것이 없습니다.’ 개인 의원을 닫은 이후 2008년 82세의 나이에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재활요양병원 내과 과장으로 재취업하여 12년간 노년의 환자들을 치료하며 함께 늙어갔습니다. 병원에서 제안한 ‘명예원장’ 직함을 마다한채 숙환으로 소천할 때까지 환자들을 돌봤다고 합니다. 고인은 평소 장수 비결에 대해 ‘눕지 말고 움직여라, 자기 건강만 챙기지 말고 주위도 살피라’고 했답니다. 마지막 순간 남긴 세마디 말은 ‘힘내라’ ‘가을이다’ ‘사랑해’였다고 합니다. (이상은 동아일보 이진영 논설위원의 칼럼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한원주 의사 선생님의 기사가 더욱 제 눈길을 끈 것은 이분이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점도 있지만, 지난 주일을 깃점으로 저도 ‘육학년’에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장수시대가 열려 옛날보다 거의 한 세대를 더 살 가능성이 많은 이 시대에, 앞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론이 났습니다. ‘하늘나라 복을 많이 받는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고 나니까 마음이 좀 더 바빠졌습니다. 할 일도 많이 눈에 띄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아졌습니다. ‘가을입니다.’ 여러분 모두 더욱 ‘힘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도님들 모두 ‘사랑합니다.’
모처럼 한국 신문에 기독교 신자 한 분에 대해서 온전히 긍정적인 기사가 나왔습니다. 지난 9월 30일 94세를 일기로 소천하신 한국 최고령 현역 여의사 한원주 닥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분은 부모님이 모두 3.1독립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른 항일지사였습니다. 뒤늦게 의학을 공부한 아버지가 병원을 개원해서 번 많은 돈을 사회에 환원했다고 합니다. 돌아가실 때 여섯 자매에게는 살던 집 한 채만 남기고, 대신 공부를 충분히 하도록 지원했습니다. 형제 중 셋째 딸인 고인은 경성의학여자전문학교를 졸업한 후 산부인과 전문의를 취득한 다음 남편과 미국 유학길에 올라 미국에서 내과 전문의 자격을 획득하고 귀국했습니다. 여자 산부인과 의사가 드물던 시기라 병원이 아주 잘되어 돈을 많이 벌었는데, 물리학자였던 남편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제2의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내과 전문의 자격이 있었기 때문에 매주 1회 무료 진료를 시작했고 1988년에는 자신의 개인 의원을 폐업하고 아예 무료 진료를 위한 의료선교의원을 개원해서 어려운 환자들을 돌보았다고 합니다. 주말에는 시골 교회와 복지관을 돌면서 외국인 근로자, 노숙인, 다문화가정 가족들을 섬겼고, 휴가철에는 매년 선교지에 다니면서 의료선교 활동이 힘썼다고 합니다.
본인은 본래 약골인데다 부모님으로부터 고혈압과 위.십이지장궤양을 물려받았지만 봉사활동을 하면서 ‘바쁘고 기쁘게’ 살다보니 몸도 마음도 건강해졌다고 합니다. ‘병원을 운영할 땐 환자가 치료비를 낼 수 있을까를 늘 염려했는데, 그런 걱정 없이 무료 진료를 하고 나면 얼마나 홀가분한지 모릅니다. 넘치는 재물보다 마음의 기쁨이 한량 없으니 나로선 손해 본 것이 없습니다.’ 개인 의원을 닫은 이후 2008년 82세의 나이에 경기도 남양주시에 있는 재활요양병원 내과 과장으로 재취업하여 12년간 노년의 환자들을 치료하며 함께 늙어갔습니다. 병원에서 제안한 ‘명예원장’ 직함을 마다한채 숙환으로 소천할 때까지 환자들을 돌봤다고 합니다. 고인은 평소 장수 비결에 대해 ‘눕지 말고 움직여라, 자기 건강만 챙기지 말고 주위도 살피라’고 했답니다. 마지막 순간 남긴 세마디 말은 ‘힘내라’ ‘가을이다’ ‘사랑해’였다고 합니다. (이상은 동아일보 이진영 논설위원의 칼럼을 재구성한 것입니다)
한원주 의사 선생님의 기사가 더욱 제 눈길을 끈 것은 이분이 신실한 기독교인이었던 점도 있지만, 지난 주일을 깃점으로 저도 ‘육학년’에 접어들었기 때문입니다. 장수시대가 열려 옛날보다 거의 한 세대를 더 살 가능성이 많은 이 시대에, 앞으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시간을 어떻게 보낼 것인지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론이 났습니다. ‘하늘나라 복을 많이 받는 삶을 살자’는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에 미치고 나니까 마음이 좀 더 바빠졌습니다. 할 일도 많이 눈에 띄고 하고 싶은 일도 많아졌습니다. ‘가을입니다.’ 여러분 모두 더욱 ‘힘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성도님들 모두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