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요즘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독교>_4/4/2021

Author
관리자
Date
2021-04-1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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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한국에서 꽤 유명한 인사들이 편안한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 받는 프로를 잠깐 본 적이 있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름만 대면 다 알만한 정치인 출신의 유튜버, 현직 정치인, 그리고 방송에 많이 나오는 물리학자, 그 밖에 연예인 몇 사람이었습니다. 그날의 주제는 뜻밖에도 종교가 우리 사회에 과연 필요한가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참석자들은 대부분 무신론자였을 뿐만 아니라 자기가 무신론자라는 사실에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사람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일말의 양심이 있었던지 종교에는 역기능도 있지만 순기능도 있기 때문에 세상에 종교가 있어야 할 자리는 분명히 있다는데 모두 동의했습니다. 다만 그들이 다같이 동의한 또 다른 한가지는, 종교의 필요성은 인정하지만 나한테 종교를 믿으라고 강요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종교를 가진 사람은 가진대로 살고, 종교가 없는 우리는 우리들 나름대로 만족하면서 살고 있으니까 건드리지 말아달라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오고간 대화는, 오늘날 교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의 종교관, 더 나아가 기독교를 바라보는 평균적인 시각이 아닐까 하고 느껴졌습니다. 그날 참석자들이 기독교라고 특정하지는 않았지만, 종교에 대한 불만스런 소감을 내놓을 때는, 다분히 기독교를 지칭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습니다. 정말 이 시대에 특히 한국 사회에서 전도가 어렵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소위 오피니언 리더들이 종교에 대해 갖고 있는 반감이 크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기독교인들에게 전도를 포기하라고 한다면 그것은 숨을 쉬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크게 오해하는 것은 이것입니다. 우리가 가진 기독교 신앙은 어떤 교리체계를 받아들이거나 경전을 떠받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신앙은 교리 이전에 어떤 한 인격체를 내 삶의 구원자요 주인으로 받아들이고 그분과 친밀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물론 그 대상은 예수님입니다. 그분과의 인격적인 관계가 맺어질 때 신앙생활이 비로소 이해가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는 체험의 종교입니다. 영적 체험이 없으면 아무리 말로 설명해도 무슨 말인지를 모르고 논쟁이 되버리기 쉽습니다. 마치 연인과 사랑에 빠진 사람이 그 사랑의 관계 때문에 얼마나 삶이 달라지고 행복한지를, 사랑해보지 않은 사람은 도저히 알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신앙생활은 처음에는 입으로 시인하는 것으로 시작하지만, 그 다음에는 마음의 변화와 구체적인 체험이 따라오게 되어 있습니다. 기도응답을 통해서, 또는 신선한 영적 각성을 통해서 체험이 일어납니다. 이러한 영적인 체험은 초신자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래 믿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필요합니다. 오랜 신앙생활의 햇수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보장해주지 않습니다. 반면 친밀한 주님과의 인격적 교제 안에 있는 사람은 천하무적입니다. 어떤 실망스런 상황에서도 감사의 제목이 있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습니다.
세상적인 기준에서 볼 때 기독교 신앙은 도저히 설명이 불가능합니다. 주님과의 인격적 관계 속으로 들어가야만 믿음 생활이 이해가 됩니다. 그리고 주님과의 관계는 늘 친밀해야 합니다. 항상 나와 주님과의 거리를 살펴서 조금이라도 멀어졌다고 생각하면, 주님 쪽으로 바짝 다가가야 합니다. 긴 코로나 기간으로 인해 주님과의 거리가 멀어진 사람들이 늘어난 것 같습니다. 신앙생활은 가랑비에 옷젖듯이 하는 것입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주님과 친밀한 관계로 접어들 수도 있고, 반대로 무신론자들과 다름없는 냉랭한 자리로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팬데믹 상황이 수그러들고 있습니다. 혹시라도 그동안 신앙생활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방향타를 바로 잡고 영적 회복의 길로 기수를 돌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