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일은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_5/16/21

Author
관리자
Date
2021-05-20 12:06
Views
114
이달 초 어느 일간신문에 ‘일은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는 제목의 칼럼이 났습니다. 평소에 인간의 행복에 관한 글을 많이 쓰는 서울대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의 글인데 우리가 사는 이 시대에 어느덧 일이 종교화되고 있음을 간파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이미 ‘일이라는 종교’의 신자가 되었음을 인식하지 못할 만큼, 일은 은밀하고 세련되게 사람들을 포섭하고 있다는 것이다. 최교수는 이것을 우리가 암송하는 주기도문에 빗대어 이렇게 표현합니다.
‘하늘에 계신 나의 일이여, 거룩히 여김을 받으소서. 회사의 비전이 나의 소명이 되어 이 땅에서 이루어지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우리의 무능과 실패를 용서하시고, 다만 나태의 유혹에서 구하소서.’
일은 이미 거룩한 경배의 대상이 되었고, 일용할 양식을 제공할 뿐 아니라, 현대인에게 가장 중요한 자기 정체성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일의 정의는 시대에 따라 ‘직업(job)’에서 ‘커리어(career)’를 거쳐 ‘소명(calling)’으로 바뀌다가, 마침내 현대인들에게는 일이 삶 자체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일터에서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사람은 루저로 전락하고, ‘네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을 하라’는 말은, 일이라는 새로운 종교의 핵심 메시지가 되었습니다. 아무리 일을 해도 일을 통해 삶의 의미와 행복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은, 깊은 자괴감에 시달리며, 일 바깥에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진정성이 결여된 사람으로 취급당합니다. 일에서 의미를 발견하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한 소수의 사람들은 일이라는 종교의 사제처럼 행세합니다. 그들은 가족과 친구와 보내는 행복한 시간을 늘이기 위해 일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일을 위해 가족과 친구를 희생하는 길을 걷고, 이들에게 바쁨은 지위의 상징이요, 탈진(burnout)을 훈장처럼 여깁니다. 최 교수는 이렇게 자신의 글을 맺고 있습니다. ‘원래 일이란, 여유 있게 쉬려고 하는 것이 아니던가? 일을 신의 자리에서 내려오게 해야 한다. 일이 삶의 목적이 아니라 수단의 자리를 지킬 때, 일터에서의 행복은 오히려 쉽게 발견된다. 가정의 달에 다시 결심해본다. 일은 일일 뿐이라고.’ 이 글을 읽으면서 목회도 하나의 일일진대, 저도 최교수가 지적한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을 깊이 공감했습니다. 일은 어디까지나 수단입니다. 우리 인생의 목표는 일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일은 그것을 이루게 해주는 가장 중요한 수단일뿐, 일이 우리를 지배해서는 안됩니다. 일의 위험성은 다른 것을 희생시키기 쉽다는 것입니다. 건강도 인간관계도 대부분 일을 과도하게 하는데서부터 문제가 생깁니다. 과도한 노동은 장래의 안전을 내 힘으로 보장하겠다는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이것은 불신앙의 다른 표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주시기 훨씬 이전에 안식일을 제정하시고, 몸소 안식의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자신이 어느덧 일에 목숨을 거는 ‘일 종교’의 신자가 되지 않았는지 돌아보고 가장 가까운 사람부터 사랑을 실천하는 가정의 달을 보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