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회칼럼

<당신의 청중은 누구입니까?>_8/1/2021

Author
관리자
Date
2021-07-31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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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명>이라는 책으로 유명한 오스 기니스는 소명을 따라 사는 사람이 간과하지 말아야 할 중요한 요소 중 하나로 ‘청중’을 들고 있습니다. 여기서 청중이란 내가 하는 일을 보는 사람입니다. 광인이나 천재, 혹은 극단적 이기주의자들이라면 순전히 자신만을 위해 일할 수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청중을 의식하게 마련입니다. 문제는 우리에게 청중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라 누가 우리의 청중이냐 하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해서 살아가는 소명자들은, 다른 모든 청중을 밀어내는 단 하나의 청중(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인생’이라고 오스 기니스는 힘주어 말합니다. 예수님도 산상수훈에서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갚으시리라’(마 6:4)고 말씀하셨습니다. 청교도들은 이런 의식이 철저했습니다. 존 코튼이라는 청교도 지도자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가림으로 하지 말라’(엡 6:6)는 말씀을 인용하며 ‘우리는 하나님을 섬김으로써 인간을 섬기고 인간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을 섬긴다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했습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청교도의 시대와 정반대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청교도들이 내부지향적이었다면 현재는 외부지향적입니다. 십대들은 끊임없는 같은 또래들의 압박(peer pressure)을 받고, 여성들은 유행과 잡지에서 보는 외모지상주의를 쫓아가고, 정치인들은 여론의 향배에 자신의 영혼을 팔아버립니다. 목회자들마저 ‘교인들의 눈치를 보며’ 중심을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스 기니스는 청교도들의 자세를 어떤 경우에도 회전축의 중심을 유지하는 자이로스코프에 비유합니다. 항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비춰보는 코람 데오(Coram Deo)의 정신이 청교도 신앙의 기본이었습니다.
그에 비해 오늘을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모습은 ‘타인’이라는 청중에 묶인 정도가 한계를 넘은 것 같습니다. 단적인 예가 SNS에 지나치게 몰입하는 것입니다. SNS에는 여러가지 좋은 순기능들이 있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최초의 SNS는 1999년 한국에서 만들어진 ‘아이러브 스쿨’이라는 동창찾기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그 때 도무지 연락처를 모르던 친구들의 소식을 듣는 기쁨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후에 엄청난 속도로 SNS가 발전하면서 이제는 수를 다 셀 수 없을 정도의 많은 플랫폼이 사용되고 있습니다. 동시에 유튜브라는 강력한 영상매체가 나타나서 자신의 생각과 주장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사가 그렇듯이 SNS와 유튜브에 장점이 많지만 반대로 역기능이 많습니다. 자신의 삶과 생각을 순수하게 나누기보다는 실제보다 과장된 모습으로 포장하거나 과시하려는 유혹이 많은 곳이 SNS입니다. 더욱이 자신의 얼굴을 가리고 다른 사람을 무책임하게 비판함으로써, 거기서 받은 씻을 수 없는 상처로 인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청년들이 부지기수입니다.
제가 보기에 믿는 성도들에게 과도한 SNS 활동은 자신의 유일하고도 참된 청중이 누구인지를 잊어버리게 만들기 쉽습니다. 지나친 SNS 활동의 반대는 하나님과 독대하는 골방입니다. 기도의 골방, 말씀 묵상의 골방, 자기 성찰의 골방, 이런 것들은 본질상 다른 사람들에게 드러낼 수도 없고, 또한 드러낼 필요도 없는 것들입니다. 우리 영혼의 참된 능력은 오직 나의 유일한 청중이신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삶의 예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나의 입술의 모든 말과 나의 마음의 묵상이 주님 앞에 열납되기를 원하나이다’(시 19:14) 당신의 청중은 누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