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금주의 성경통독 도우미(12/19-12/25)

Author
PBC
Date
2021-12-18 13:14
Views
367
본문: 히 1-13장, 약 1-5장, 벧전 1-5장, 벧후 1-3장, 요일 1-5장

*히브리서 1-13장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한 많은 유대인 성도들을 지역 사람들로부터 받는 핍박을 피하기 위해 다시 유대교로 되돌아가고 싶어 했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들에게 그리스도 안에서 성숙한 단계로 정진해 나가도록 권고하고 있다. 저자의 이같은 간청은 유대교 체제보다 더 뛰어나신 그리스도의 우월성에 근거하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천사들보다 뛰어나신 이유는 천사들이 그분을 섬기기 때문이다. 모세보다 뛰어나신 이유는 모세가 그리스도로 인해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아론 제사장보다 뛰어나신 이유는 그리스도의 희생이 단번에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율법보다 뛰어나신 이유는 더 나은 언약을 세우셨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하면 그리스도를 위해 고난당함으로 인해 얻어지는 것은 유대교로 복귀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정진해나가는 것은 시험을 이기는 믿음과 자기 훈련과 선한일에 드러나는 사랑을 만들어낸다.
히브리서 저자에 대해 의견이 분분하지만 저자가 누구인지 정확하지 않다. 바울을 저자로 보기도하고 바나바, 누가, 클레멘트로 보기도 하지만 정확하지 않다.
히브리서의 기록연대는 주후 64-68년 사이로 보는 것이 가장 타당하다.
신약 성경 중에서 문체, 접근 방법에 있어서 히브리서는 독보적일뿐 아니라 저자가 누구인지 아직까지 신비에 쌓여 있는 유일한 책이다. 심오한 깊이를 가지고 있는 본서는 모든 면에서 그리스도께서 더 뛰어나다 란 사실을 점층법을 이용해 증명해 나가면서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설명해 나가고 있다. 인격에 있어서 그리스도께서는 천사들, 모세, 여호수아보다 뛰어나고 하신일을 통해 볼때에는 더 나은 제사장직, 언약, 성소, 제사를 제시하고 계신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때문에 당하기 시작하는 핍박으로 인해 독자들이 다시 유대교로 복귀하려는 위험스런 상황에 처해 있음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결국 본질적인 것에서 그림자에 불과한 상태로 되돌아 가게 되는 셈이다. 그리스도의 우월성을 긍정적으로 제시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본서의 저자는 그리스도로부터 떠나갈 때의 일어날 위험에 대해 5번에 걸쳐 경고하고 있다(2:1-4, 3:7-4:13, 5:11-6:20, 10:19-39, 12:25-29). 이같이 중간에 삽입된 경고는 등한히 여기는 것 (2:1-4)과 거역하는 것(12:25-29)에 대한 경계를 포함하고 있다.
그리스도 인성의 우월성(1:1-4:13)과 그리스도의 사역의 우월성(4:14-10:18)을 구약의 인용을 통해 증명한 다음에 저자는 이러한 진리의 말씀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우월성을 설명하는데 실질적으로 적용하고 있다(10:19-13:25).
그리스도의 인성의 우월성(1:1-4:13)
통상적인 인사말 대신 본 서신서는 구약의 선지자들보다도 뛰어나신 그리스도(1:3)라는 주제로 곧바로 들어가고 있다. 기독교는 하나님의 가장 고귀한 계시 위에 기초하고 있다.
독생자를 통한 하나님의 사적인 계시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선지자들보다 뛰어나시며 모세 율법의 전달자였던 천사들보다 뛰어나시다(1:4-2:18, 2:2, 행 7:53).
이 같은 사실은 그리스도의 이름, 지위, 그를 경배하는 천사들, 그리고 성육신을 통해 나타나고 있다. 하나님의 아들이 몸과 피를 가지심으로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셨고(2:17) 많은 이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셨다(2;10). 그리스도께서는 모세보다 더 뛰어나시다(3:1-6). 모세는 하나님의 집에서 종으로 있었지만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이다. 이러한 진리들로 인해 독자들은 불신자들에게 임할 하나님의 심판을 피하라고 저자는 권고하고 있다(3:7-4:13). 불신 때문에 출애굽 세대는 가나안을 정복하는 세대가 되지 못했다. 그 결과 그리스도의 제사는 여호수아를 통해 얻어진 것보다 훨씬 위대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 소유할 수 있는 영원한 안식에 들어가도록 저자는 권면하고 있다.
그리스도 사역의 우월성(4:14-10:18)
아론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직보다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이 더 뛰어나다(4:14-7:28). 성육신 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다(히 4:15). 그리스도께서는 레위인은 아니지만 멜기세댁의 반차를 따라 대제사장의 자격을 가지고 계신다. 레위 지파보다 멜기세댁이 우월함은 레위가 아브라함을 통해 십분의 일을 멜기세댁에게 바쳤다는 사실에서 볼 수 있다(7:9-10).
아브라함은 멜기세덱에게 축복을 받으므로 낮은 자가 높은 자에게 복 비는 것을 받았다(7:7). 5장 11절에서 6장 20절에 삽입되어 있는 경고의 말씀은 독자들로 하여금 구원이 기초와 회개를 넘어 완전한 데 나아가도록 권고하고 있다(6:1).
하나님의 맹세(7:21)를 통해 그리스도께서는 영원히 대제사장이 되셨고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가 되셨다(8:6). 새 언약은 옛 언약을 폐지한 것이다(8:6-13). 우리의 위대하신 대제사장 은 손으로 짓지 아니한 곧 이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더 크고 온전한 장막에서 봉사하고 계신 것이다(9:11). 예전의 제사장들과는 다르게 그리스도께서는 죄 없이 자원하는 속죄물로 단번에 자신을 드리셨다(9:1-10:18)
그리스도의 믿음 생활의 우월성(10:19-13:25)
이상의 논리적 전개 즉 그리스도의 우월성에 대한 말씀은 독자들이 그리스도 안에 가지고 있는 믿음을 버리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다(10:19-39). 독자들이 간직해야 할 믿음에 대해 11장 1-3절은 정의를 내리고 있으며 11장 4-40절에 실례가 나와 있다. 구약 성도들의 생활 속에 나타난 믿음의 승리와 성취는 그리스도 안에서 더 좋은 것 을 받을 사람들로 하여금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를 바라보도록 하는 좋은 격려가 된다. 예수님께서 엄청난 핍박을 견디신 것처럼 그분을 믿는 자들도 거룩함을 위한 고난(12:1-29)을 이겨나가야 할 것이다.
히브리서는 이런 시기가 왔을때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지 말고 도리어 그리스도 안에 소망을 두도록 독자들을 경고하고 있다. 독자들의 생활의 특성은 바로 그리스도를 향한 그들의 헌신으로 표현될 것이며(13:1-19), 친절, 관심, 정절, 만족, 순종을 통해 서로에 대한 그들의 사랑을 나타낼 것이다. 저자는 성경 중에서 가장 멋있는 축도들 중 하나로 결론을 지으며(13:20-21) 개인적인 말을 마지막으로 덧 붙였다.

*야고보서 1-5장
행함이 없는 믿음은 믿음이라고 부를 수 없다. 그것은 죽은 것이요 죽은 믿음은 믿음이 아예 없는 것보다 더 나쁘다. 믿음에는 행함이 따라야 한다. 믿음은 열매가 있어야 한다. 믿음은 눈으로 볼 수 있어야 한다.말로만 하는 믿음은 충분하지 못하다. 정신적인 믿음 역시 불충분하다. 믿음은 행동으로 드러나야 한다. 유대인 성도들에게 주는 본 서신서를 통해 야고보는 참된 믿음이란 행함이 따르는 것 임을 강조하면서 참된 믿음과 일상 생활에서 겪는 실제적인 경험을 연결시키고 있다. 믿음은 시험을 이겨 낸다. 시험이란 왔다가 없어지지만 강한 믿음은 시험에 맞서 대항하며 인내가 생기게 해준다. 믿음은 시험을 이해한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정욕에 못이겨 죄에 빠지도록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믿음은 말씀에 순종한다.
믿음은 단순히 듣고 행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직접 행하는 사람들을 만들어낸다. 믿음은 어떤 편견도 품지 않는다.야고보에게 있어서 믿음과 편애란 공존하지 않는다. 믿음은 행함속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믿음은 단순한 말 이상의 것이며 지식 이상의 것이며 순종을 통해 나타나며 하나님의 약속에 전적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믿음은 혀를 제어한다. 신체중에서 비록 작은 부분이지만 엄청난 힘을 가진 혀는 반드시 제어되어야 한다. 믿음은 할 수 있는 것이다. 믿음은 지혜롭게 행한다. 믿음은 우리로 하여금 세상에서 오는 지혜를 피하고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를 선택할 능력을 가져다준다. 믿음은 오실 주님을 인내하면서 기다리는 것이다. 시련과 시험을 당하는 동안 믿음은 우리의 불평을 억누르게 해준다.
야고보서의 저자는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로 경건함의 본이되며 낙타무릎을 가진 기도의 사람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이 파괴되기 전에 주후 62년에 66년 사이에 비참한 순교자가 되어 죽음을 맞이했다. 본서는 주후 45년에서 야고보의 죽음 직전 어느 때인것으로 보고 있다. 본서는 신약성경 중에서 가장 처음 쓰여졌다고 보고 있다.
야고보서는 일상 생활에 있어서 진실하게 믿음대로 살아가는 데 도움을 주는 실제적인 지침서라고 할 수 있다. 성경적 믿음이란 말씀을 듣는 것에서 행동으로 옮기며 동의하는 단계에서 행동으로 옮기는 단계로 옮겨가는 것을 말한다.
야고보서는 신약의 잠언 이라고 불리우는데 그 이유는 지혜문학에서 볼 수 있는 도덕적인 교훈을 간결한 문체로 기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야고보가 구약(특히 지혜 문학으로부터)과 산상수훈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이 분명하다. 그러나 불공평, 사회 부정에 대항해 야고보가 강력하게 설교하고 있으므로 일부에서는 야고보를 신약의 아모스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편지에는 여러 주제가 나와 있기 때문에 본문을 일목요연하게 나누는 데는 어려움이 있다.
믿음의 시험(1:1-18)
본서의 첫 부분은 시련과 시험을 당했을 때 참된 믿음의 특징을 아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 지역적으로 흩어져 있던 유대인 성도들에게 한 구절의 인사말을 기록한 뒤 야고보는 외적으로 믿음을 점검하는 첫번째 주제를 빠르게 전개시켜 나가고 있다. 시련은 성숙한 인내심을 키워내며 하나님께 의지하여 지혜와 힘을 공급받는 자세를 갖도록 한다. 내적 시험들은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을 우리들에게 주시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 아니다. 죄악으로 빠져드는 것은 초기에 방지하지 않으면 그로 인한 결과는 엄청날 수 있다.
믿음의 특성(1:19-5:6)
시련에 대한 바른 태도는 듣기는 속히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는 것인데 이 말씀을 본서의 나머지 부분을 요약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듣기를 속히 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태도이다. 참된 마음으로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듣는 것 이상을 의미한다. 말씀을 받은 다음에는 삶에 적용해야 한다. 이교훈 말씀 다음으로 야고보는 실례와 적용까지 전개하고 있다. 참된 믿음이란 부자뿐만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도 사랑할 줄 아는 편애하지 않는 풍성한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이다. 참된 믿음은 행동에서 드러나야 한다. 로마서 4장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이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실을 예로 들고 있다. 그러나 야고보는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다. 겉으로는 모순되는 말씀들이지만 로마서 4장과 야고보서 2장은 동전의 양면을 가르키는 말씀들이다. 바울이 하나님앞에서 의에 대해 썼다면 야고보는 사람들 앞에서 드러난 의를 강조한 것이다. 변화를 일으킬 수 없는 믿음이란 절대로 구원받을 만한 믿음이될 수 없다. 행위에서 말로 주제를 바꾸어 야고보는 살아 있는 믿음이 혀를 제어하는지 지적하고 있다. 혀는 작지만 선과 악을 모두 성취할 만한 힘을 가지고 있다. 오직 힘 있는 믿음을 통해 적용된 하나님의 능력만이 혀를 길들일 수 있다. 야고보는 계속해서 하나님께로 온 지혜와 인간의 지혜를 일곱가지 특성을들어 비교하고 있다.
세상적인 것과 물질에 관한 욕심은 믿음이 성장하지 못하도록 방해가 되는 마찰만 만들어낸다. 세상적인 체제는 하나님과 원수가 되며 세상의 연락을 추구하는 것은 탐욕과 시기와 다툼과 교만이 생기도록 만든다. 성도들이 취해야 할 바른 길은 겸손하고 회개하는 심령으로 하나님께 순복하는 길이다. 이러한 태도야말로 다른 사람들에 대한 태도까지 변호하도록 해준다. 겸손하고 복종하는 자세는 모든 생업에 적용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이유는 자만과 부정, 그리고 이기심이 부에서 생기기 때문이다.
믿음의 승리(5:7-20)
야고보는 이 편지를 읽는 이들에게 미래에 다시 오실 주님을 생각하면서 현재 당하는 고난을 인내심을 가지고 견디라고 격려하고 있다. 때로는 부유한 사람이나 환경에 의해 눌림을 당하겠지만 욥이 보여준 것처럼 믿는 자들은 이러한 어려운 것들 속에도 놀라우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확신해야 한다.
야고보서는 본서를 기도와 회복에 관한 실제적인 말씀으로 결론 내리고 있다. 의인의 기도는(즉 교회 장로들) 성돋르을 낫게 하고 회복시키는데 역사하는 힘이 많다. 죄를 해결하지 않으면 병이나 심지어 죽음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베드로전서 1-5장
핍박은 성도의 삶을 성장하게 하든지 아니면 불평하게 만든다. 이 모든 것이 선택에 달려 있다. 핍박을 당하고 있는 유대인 성도들에게 이 편지를 쓰면서 베드로는 저들의 뿌리를 상기키시고 있다. 산소망으로 새로 태어난 그들은 이제 그들을 부르신 거룩한 자를 닮아가면서 성품과 행위에 있어서 날로 훌륭해져갈 것이다. 이러한 성품을 통해 얻는 열매는 순종을 통해 드러나는 행동들이다. 즉 율법에 따르는 시민들, 충실한 고용인들, 복종하는 아내들, 사랑하는 남편들이 바로그것이다. 성도들은 성품과 행실 모두 뛰어나야 한다. 산소망을 가지고 다시 태어났으므로 그들은 자신들을 부르신 거룩한 분을 닮아가야 하는 것이다. 성품의 열매는 복종에 깊이 뿌리를 내린 행동이어야 ㅎ나다. 그것은 베드로전서에 국가에 대한 시민들, 주인에 대한 종들, 남편들에 대한 아내들, 아내들에 대한 남편들, 다른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태도 등으로 나타나 있다. 복종이란 의미를 완전히 이해한 베드로는 마침내 핍박 중 가장 어려운 부분을 다루고 있다.
크리스천들은 결코 우리를 시현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되며 오히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한다는 생각으로 기뻐해야 한다. 삶에 대해 이러한 태도를 가진다면 성도는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 아래 복종하는 것으로 삶의 진정한 절정에 이를 수 있다.
베드로는 주후 68년 네로가 죽기 전에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린 채 처형당했다고 전해진다.
베드로는 점점 기독교인들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고 있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순례자들을 위해 본서를 기록했다. 이러한 성도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 편에 서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고난당하기 시작했으며 베드로는 본서를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산 소망의 실체를 강조함으로써 그들에게 조언과 위로를 전하고 있다.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굳건히 서 있으면 이러한 고통 이면에 하나님의 계획이 있음을 알게 디고 불시험도 견딜 수 있다. 본서는 논리적으로 성도의 구원(1:1-2:12), 성도의 복종(2:13-3:12), 성도의 고난(3:13-5:14)에 대해 전개해 나가고 있다.
성도의 구원(1:1-2:12)
본서를 로마의 여러 지방에 보내면서 베드로는 인사말을 통해 성삼위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약술하고 있다. 그 다음으로 그는 이 구원의 풍성함을 세 기간으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다. 첫째 베드로는 미래에 성도들의 기업에 나타날 것을 예시하고 있다. 둘째, 많은 시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산 소망으로 인한 현재의 기쁨을 설명하고 있다. 셋째,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예언했던 옛 선지자들을 회고하고 있다.
이 구원에 대한 바른 반응은 성화 또는 성결을 추구하는 것이다. 이는 세상과 일치하던 생활에서 행동과 사랑 안에서 경건함으로 옮겨가는 것을 포함한다. 이러한 사실을 염두에 두고 베드로는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1:23)을 적용해 나감으로써 갓난 아이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며… 자라며(2:2) 거룩한 제사장으로 살아가도록 권고하고 있다.
성도의 복종(2:13-3:12)
베드로는 이 세상에서 성도들이 가지는 관계들로 화제를 바꾸면서 화목과 진정한 자유에 대해 예수님의 방법인 복종의 자세를 갖도록 호소하고 있다. 권력을 가진 자들이나 사회적인 권세를 가진 자들에게 그리스도로 인해 복종하는 것은 다른 믿지 않는 자들에게 좋은 간증이 된다.
결혼 관계에 있어 복종에 대해 언급하기 전에 베드로는 성도들이 고난에 대해 다시 언급하면서 그리스도를 최고의 모범으로 삼고 있다. 주님께서는다른 사람들의 구원을 위한 대속물로서 죄도 없으면서 묵묵히 고난당하셨다.베드로는 그리스도를 닮은 복종과 겸손을ㄹ 말하면서 읽는 이들에게 호소하고 있다.
성도의 고난(3:13-5:14)
세번에 걸쳐 베드로는 성도들이 고난을 당한다면 이는 의로움 때문이요 결코 악을 행한 결과가 아니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 장의 마지막 부분은 해석하기 매우 어려운 본문이다.
19-20절은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사이에 악한 영들 또는 홍수 이전에 존재했던 사람들의 영들에게 전파하셨음을 뜻할 수도 있다. 다르게는 그리스도께서 노아를 통해 홍수 이전 사람들에게 전파하셨다고 볼 수 있다. 21절은 회개의 내적 태도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을 믿음으로써 사람이 구원을 받고 이러한 태도가 물세례에 반영딤을 가르치는 말씀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성도로서 이 편지를 읽는 이들은 예전에 그들이 따랐던 육체의 정욕을 더 이상 좇아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뜻을 좇아야 한다. 그들이 당하고 있을지도 모를 고난을 생각하면서 베드로는 서로 열심히 사랑하며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그들이 가진 성령의 은사들을 발휘하여 서로 세워나가도록 권고하고 있다. 믿음 때문에 그들이 비방과 욕을 당한다 하더라도 놀라서는 안될 것이 모든 주권을 가지신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에는 다 이유가 있으며 그의 이름과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이 부끄러움을 당치 않을 심판의 때가 다가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그 영혼을 미쁘신 조물주께 부탁해야 한다(4:19)
여러 지방 교회들의 장로들에게 특별히 부탁하면서 베드로는 하나님이 이들에게 맡기신 양떼들을 부지런하고 온유한 목자처럼 양육하라고 권고하고 있다. 전반적으로 독자들에게 서로에게 뿐 아니라 때가 되면 높이실 하나님에 대하여 늘 겸손으로 옷 입으라고 권면하고 있다.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성도들을 영원한 영광으로 부르신 것이 밝혀질 것을 확실히 아는 믿음 가운데서 마귀를 대적해야 한다. 베드로는 마지막으로 그의 주제(하나님의 참된 은혜)를 제시하면서 인사와 축도로 본서를 끝맺고 있다.

*베드로후서 1-3장
베드로후서의 수신자들은 베드로전서와 같지만 주제와 목적은 다르다. 불신자들로부터 기독교인들이 당하는 핍박을 견디기가 너무 힘들지만(베드로전서) 믿는 성도들의 공동체 안에서의 변절은 훨씬 더 파괴적이었다(베드로후서). 교회 안에서의 독소가 미치는 악영향을 저지하기 위해 베드로는 독자들에게 믿음의 영원한 진리를 상기시키면서 더 성숙한 성도로 계속 성장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소돔과 고모라처럼 심판이 다가올 것이란 사실을 경멸하는 자들은 드러날 것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다가는 결국 멸망에 이를 것이다. 성도들에게 주는 경고의 말씀은 분명하다. ‘ 잊지 말라… 힘쓰라…삼가라!’(3:8,14,17)
베드로전서는 외부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는 반면 베드로후서는 내부적인 문제를 다루고 있다.
나쁜 교리를 퍼뜨리는 거짓 선생들에 대해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먼저 그는 성도들이 자신의 삶을 주의 깊게 돌아보도록 당부하고 있다. 성도의 삶이란 도덕성, 지식, 자기 절제, 인내, 경건, 형제 우애, 이기적이지 않은 사랑을 요구한다. 그와 반대로 거짓 선생들을 정욕적이며 교만하며 탐욕적이다. 이들은 장래에 심판이 있음을 무시하고 마치 현재가 미래의 모습과 같은 것처럼 아무렇게나 살고 있다.
그러나 베드로는 비록 하나님께서 더디하실지라도 결국 심판의 날은 반드시 올 것임을 상기시키고 있다. 이러한 생각에서 성도들은 경건하고 흠없이 믿음에 굳게 서서 살아가야 한다.
본서는 베드로죽음 직전에 기록되었기 때문에 아마도 로마에서 기록되었던 것 같다.
베드로의 순교는 추후 64년과 68년 사이에 일어났다.
베드로는 자신의 독자들의 외부의 반대 세력에 대해 바른 자세를 갖도록 격려하기 위해 본서를 기록했다. 그의 두번째 서신인 본서는 멸망케 할 이단(2:1)의 세력인 거짓 선생들에 의해 야기된 내부의 반대 세력에 초점을 두고 있다.
성도의 성품을 양성함(1장)
베드로의 인사말은 1장의 중심 주제인 예수 그리스도를 바로 아는 지식의 서론 부분에 해당된다. 그 다음으로 독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에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 저들의 것임을 상기시켜주고 있다. 그들은 썩어질 세상을 피하여 부르심을 받아서 그리스도와 합했기 때문에 배드로는 믿음으로부터 시작해 사랑에 이르는 8가지의 성도들의 덕목을 제시하면서 그들을 권고하고 있다. 만일 성도가 신앙 고백을 한 것을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는 자신을 부르신 목적을 저버리는 것이기 때문에 영적으로 무익한 사람이다.
이 서신서는 베드로가 죽기 얼마 전에 기록한 것으로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가지고 있는 위치의 풍성함과 진리를 굳게 잡아야 할 책임이 있음을 상기키시고 있다. 베드로는 자신의 마지막이 가까웠음을 알았으며 본서신서를 유산으로 남겨둔 것이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목격한 사람으로서 베드로는 권세 있는 예언의 말씀의 확실함을 증거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영감을 주셔서 성경을 기록한 것을 가장 분명하게 기록한 구절이 1장 21절에 나온다.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
거짓 성도들에 대한 정죄(2장)
바른 예언의 말씀을 언급하면서 베드로는 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짓 예언을 경고하고 있다. 이같은 거짓 선생들은 교회 안에서 일어나 성도들의 믿음을 흔들리게 하기 때문에 특히 더 위험하다. 베드로는 이같은 거짓 선생들의 특성들을 자세하게 묘사하면서 이들의 계략이 얼마나 무익하고 타락한 것인지 밝히고 있다. 이들의 가르침과 생활 습관이 교만하거나 이기적이지는 않지만 이들의 교활한 말들은 믿음이 아직 확고하지 않은 성도들 충분히 유혹할 만한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확신(3장)
베드로는 본서가 독자들의 마음을 일깨워 생각하게 하기 위해 기록했다고 거듭말하고 있다.임박한 강림은 분명한 사실임을 독자들에게 일깨워주기에 시의적절하며 충분하다. 거짓 선생들이 비록 하나님께서 세상 일에 그리 관여하지 않으신다고 주장하겠지만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과거에 두 차례에 걸쳐 하신 일과 앞으로 일어날 일 또 하나의 엄청난 사건 즉 창조,홍수, 현재의 하늘과 땅이 녹아짐등을 언급하면서 주의를 상기키시고 있다.
비록 그리스도의 강리에 관한 약속의 말씀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처럼 보이지만 두 가지 이유로 인해 이것이 사실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시간이 흘러가는 것에 대해 하나님의 관점이 인간의 관점과 같지 않고 강림이 지연되고 있는 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오래참으시면서 더 많은 사람이그리스도를 알기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약속이 성취될 날은 반드시 올 것이며 이 우주의 모든 체질이 에너지로 변하고 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새하늘과 새땅을 만드실 것이다.
주님의 강림의 날에 대해 베드로는 자신의 독자들이 거룩하며 흔들리지 않고 계속 성장하기에 힘쓰도록 간구하고 있다. 그가 우리를 사랑하는 형제 바울의 여러 편지를 언급한 것은 이러한 서신서들을 구약 성경고 같은 위치에 두고 있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거짓 선생들에 관한 경고를 마지막으로 한 후에 베드로는 성도들이 성장할 것을 부탁하면서 송영으로 본서를 맺고 있다.

*요일 1-5장
목회자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사랑받는 제자였던 요한은 자녀들에게와 믿음안에서 사랑하는 자들에게 편지를 쓰고 있다. 그의 편지는 다섯 가지 목적을 포함하고 있다. 사귐이 있게 하기 위하여(1:3), 기쁨이 충만하도록(1:4), 거룩함을 보존하고(2:1), 이단을 방지하며(2:26), 소망을 확신시키기 위함(5:13)이 그것이다. 하나님과 교제란 애매모호한 것이 아니라 매일 실생활에서 볼 수 있는 실체다. 요한은 자신의 영적 자녀들이 매일의 삶 가운데서 하나님과 교제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교제 측정기 로서 세가지 방법을 알려주고 있다.
(1)내가 알고 있는 모든 죄를 하나님께 전부 회개했는가(1:9)
(2)하나님의 말씀의 빛에 순종하면서 살고 있는가(2:4-5)
(3)형제들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있는가?(2:9-10)
하나님께서는 빛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이시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빛, 사랑, 생명이신 사실로 인해 즐거운 교제를 누리고 있다. 그리고 그는 영적 자녀들도 같은 교제를 가지기를 간절히 소망하고 있다.
하나님은 빛이시다. 그러므로 하나님과 교제를 갖기 위해서는 어두움이 아니라 빛 가운데로 걸어가야 한다. 빛 가운데로 걸어 나갈때에 우리의 죄를 정기적으로 고백할 수 있으며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를 계속 정결케 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앞에서 변호사로서 우리를 대변해주실 것이다.
우리가 빛 가운데로 걸어가는 증거는 바로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며 다른 형제들에 대한 증오를 사랑으로 바꾸는데 있다. 이같은 생활을 방해하는 두 가지가 있다면 바로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며 거짓 선생들의 속임수에 넘어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자녀들은 사랑 가운데 행해야 한다. 사실 요한은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또한 사랑은 실천적인 것이어야 한다. 사랑은 단순한 말 이상이며 행동으로 나타나야 한다. 사랑은 주는 것이지 받는 것이 아니다. 성경적인 사랑이란 본질적으로 무조건적인 사랑을 말한다. 다른 말로 옮기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푸는 사랑을 의미한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것에서 사랑의 본을 보이셨고 우리의 사랑이 이 같은 사랑을 닮아가면 우리는 자연히 자기 비난에서 벗어나 하나님앞에서 사랑을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생명이시다.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시는 그런 차원의 생명을 소유하게 될 것이다. 영적 생명이란 영적으로 다시 태어날 때 시작된다. 영적으로 태어남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안에 있는 믿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생명과 영생으로 가득 채워준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교제 가운데 살아가는사람은 빛, 사랑, 생명 가운데 살아가는 것이다.
요한일서는 사도 요한이 요한복음이 기록된 후에 에베소에서 쓰여진 것 같다.
사도적인 교리가 급속히 번지고 있는 거짓 가르침에 의해 도전을 받고 있었을 때 요한은 요한일서를 기록했다. 요한일서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모두 가지고 있다. 기젓 교리를 논박하는 반면 독자들이 진리를 아는 지식 가운데서 생활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요한은 하나님과의 사귐의 특성과 판단 기준을 열거하면서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과 확신을 가질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수수하게 쓰여지긴 했디만 심오한 진리를 담고 있는 본서는 사귐의 근거로서 사귐의 기초(1:1-2:27)와 사귐의 태도(2:28-5:21)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사귐의 기초(1:1-2:27)
머리말에서 요한은 사도로서 자신이 그리스도와 교제하기 시작하던 때를 회상하고 있다.
사도적인 증언을 독자들에게 그대로 전달해줌으로써 독자들도 인간의 모습을 가진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한 사귐을 가질 수 있도록 했다. 그 다음으로 사귐의 전제 조건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빛 되신 하나님과 사귀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를 통해서만 가능한데, 그 이유는 그 피가 믿는 자들을 정결케하며 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요구하시는 것들을 만족시켜주시기 때문이다. 믿는 자들을 빛 앞에 다 드러남같이 솔직하고 성실하게 살아가야 하며 빛으로 드러나는 잘못들을 기꺼히 회개할 마음이 있어야 한다. 성도의 생활속에 어떠한 죄라도 불가피하게 보여서는 안되지만 완벽하게 죄가 없은 상태는 우리가 하나님앞에 설그때까지는 불가능하다. 죄가 용서함을 받은 후에 하나님과의 사귐을 누릴 수 있다. 그 결과 이들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고 악한 자의 시험을 이기도록 힘을 얻는다. 사귐에 있어서의 경고의 말씀은 실질적일뿐만 아니라 교리적 이기도 하다. 이러한 적그리스도들과는 대조적으로 독자들은 진리를 알고 거룩한 자로 부터 기름부음을 받았다. 그러므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떠나 적그리스도들의 속이는 말을 받아들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와 같은 이단의 가르침에 대한 대책은 저들이 처음부터 들었고 저들이 받은 기름부음을 통해 확증된 사도들의 진리에 거하는 것이다.
사귐의 태도(2:28-5:21)
요한 일서의 기본주제- 그리스도 안에 거함으로 확신을 가짐-는 2장 28절에 잘 요약되어 있다.
바로 다음절은 거듭나는 것의 동기를 소개하면서 새로 태어나는 것을 의를 실천할때 나타난다고 설명하고 있다.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장래에 주께서 나타나실 때 그와 같이 우리도 완전히 변할 소망을 확실히 가질 수 있다. 우리는 현재에도 그리스도를 닮았기 때문에 죄 가운데 거할 수 없다. 그 이유는 죄는 그리스도의 인성과 그분의 역사와 정반대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안에 거하는 자는 주 안에서 거하는 한 죄를 짓지 않는다는 뜻이다(3:6). 믿는 자가 죄를 지을 때는 새로운 피조물의 모습이 아니라 처음부터 범죄자였던 사탄을 반영하는 것이다(3:7-10).
거듭난다는 것은 의로움 가운데 드러나며 의로움은 사랑 가운데 나타난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실례를 들어 사랑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사랑은 단순한 말이 아니라 자기 희생을 통해 실현된다. 이같이 사랑의 실천적 표현은 믿는 자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고 또 서로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기 때문에 기도의 응답뿐만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어엿하게 설 수 있는 확신을 갖게 한다.
요한은 4장 1-16절에서 자세하게 다루어질 두 가지의 중요한 동기 즉 하나님의 거하심과 이를 증거하는 성령의 거하심 등을 소개하고 있다. 하나님의 영이 육신을 가진 그리스도를 시인하며 사도들의 가르침을 확증하고 있다.
믿는 자가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에게 거하신다는 사실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통해 드러나며 이같은 사랑은 성육신의 본질을 보여주는 하나님과 사람간의 사귐의 결과로 생기에 된다. 이러한 사실은 또한 앞으로 올 완전한 사귐을 예견할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랑의 근원이신 주님을 맞이하도록 마음을 갖게 한다.
요한은 앞에서 설명했던 여섯 가지의 개념들을 하나의 사슬로 연결시키고 있다.(4:20-5:17)
(1)믿는 자를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할 때 당연히 생겨난다(4:20-5:1).
(2)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그분의 계명을 순종할때 생겨난다(5:2-3).
(3)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은 그의 아들을 믿는 믿음의 결과다(5:4-5).
(4)이같은 믿음은 세레(물)를 받으실 때 뿐만 아니라 십자가(피)에서 죽으실 때도동일하신 그리스도께서 예수님이신 것을 믿는 것이다(5:6-8).
(5)그리스도의 인성에 대한 하나님의 증거는 믿음으로 충분하다(5:9-13).
(6)이러한 믿음은 하나님께 기도로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해 준다(5:14-17)
중보 기도는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에 마지막 개념은 다시첫번째 개념과 다시 연결된다.
끝맺는 말(5:18-21)은 본서의 결론 부분을 분명한 세 가지 사실로 요약하고 있다
(1)죄는 사귐에 대해 위협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성도들에게 있어서는 안된다.
(2)사탄이 다스리는 세상의 체제를 대항하며 믿는 자들은 하나님 곁에 서 있어야 한다.
(3)성육신을 믿는 것은 참된 진리를 아는 것이고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이룰 수 있는 길이다.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하나님이시며 영생이시기 때문에 그분을 아는 사람은 다른 어떤 유혹적인 이단의 가르침도 멀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