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금주의 성경통독 도우미(12/26-1/1)

Author
PBC
Date
2021-12-25 13:35
Views
74
본문: 요 2.3. 유 1, 계 1-22장

*요한 2서
요일일서는 거짓 선생들을 따라갈 위험에 처한 믿는 사람들을 위해 기록되었다.
그의 두번째 서신서는 비슷한 시험에 빠져 있는 택함을 입은 어떤 부녀와 그의 자녀를 위해 기록되었다. 요한은 자신의 요점을 분명하게 제시하고 있다. 누구든지 이교훈을 가지지 않고 너희에게 나아가거든 그를 집에 들이지도 말고 인사도 말라(10절). 비록 그리스도인들의 삶 가운데 사랑은 필수 불가결한 요소이긴 하지만 의도적으로 진리를 파괴하고자 하는 사람들까지 감상적으로 포용해서는 안 된다고 요한은 가르치고 있다. 만일 그렇지 않는다면 서로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가져야 할 참된 사랑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요한은 단호히 경고하면서 편지 하나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엔 부족하므로 직접 방문하여 자세히 다루기를 약속하고 있다.
본서의 수신자는 택함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 분명히 선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진리 가운데 행하며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계명을 충실히 지키던 이들이었다. 요한은 이들을 기꺼이 칭찬해주었다. 그러나 그는 어떤 것도 당연시하지 않았다. 서 있다는 것은 또한 넘어지기 일보 직전이란 사실을 알고 있던 요한은 다시 이 말씀을 상기시키고 있다. 서로 사랑하라. 사도는 이것이 새 계명은 아니지만 다시 반복해도 될 만큼 중요한 사실임을 시인하고 있다. 그는 서로 사랑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계명대로 살아가는 것과 같은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계속해서 요한은 이 같은 사랑이라도 분별력이 있어야 함을 가르치고 있다. 사랑이란 우둔하게 아무 생각 없이 무엇이든 누구든 받아들이는 그런 사랑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적인 사랑이란 바로 선택의 문제다.분별력이 없는 사랑을 가지고 인생을 살아가는 것은 어리석을 뿐만 아니라 위험하다.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알지 못하는 자들 주변에 거짓 선생들이 맴돌고 있었다. 택함을 입은 부녀는 이같은 가르침으로부터 자신을 지켜야 했다.왜냐하면 이러한 거짓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없는 공허한 생활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이들은 하나님께 속한 자들이 아니다. 요한은 그들이 이미 배운 바 있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배척하는 어느 누구도 자기 집으로 받아들이지 말도록 경고하고 있다. 우리는 하나님과 사귐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다른 그리스도인들과 사귐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거짓 선생들과는 어떠한 사귐도 가져서는 안된다.
요한이서는 요한 일서와 같은 시대이든지 아니면 약간 후대에 기록되었던 것 같다. 아마 주후 90년경에 기록되었을 것이다.
요한은 독자로 하여금 사랑 안에 계속 행하도록 격려하는 반면 사랑을 실천할때 분별력을 가질 것을 권면하고 있다. 사랑이 결여된 진리는 독재적인 엄격함을 만들어내고 진리가 빠진 사랑은 맹목적인 감상주의에 빠지게 된다. 사랑 안에 행하는 것은 결코 진리 가운데 행하는 것과 분리되어서는 안되며 기독교의 가르침-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구원 역사-을 왜곡하는 거짓 선생들에게 친철을 베풀어서도 안된다. 요한이서는 두 부분 나눌 수 있다. 하나님의 계명에 거함(1-6절)과 거짓 선생들을 거절함(7-13절)이다.
하나님의 계명에 거함(1-6절)
인사말(1-3절)은 진리 속에 거하는 개념의 중심에 해당된다. 수신자들은 진리를 잘 순종함을 인하여 진리를 아는 모든 자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함으로 진리 가운데 행하는 독자들을 칭찬하면서(4절) 이 계명을 가르치는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을 실천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상기시키고 있다(5-6절). 하나님의 명령은 5절에 나와 있고 이에 대한 반응이 6절에 기록되어 있다.
거짓 선생들을 거절함(7-13절)
성도의 행실을 기본적으로 점검하는 것에서(형제를 사랑하는 것) 성도의 믿음을 점검하는 것(그리스도의 인성)으로 주제를 바꾸어 요한은 독자들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임하심을 부인하는 사기꾼들을 경계하도록 권고하고 있다(7-9절). 사도 요한은 강한 어조로 그리스도에 대해 잘못된 견해를 주장하는 순회하는 선생들을 도와주지도 격려하지도 말라고 명하고 있다. 본서의 결론 부분은 본서의 간략성에 대한 설명을 기록하고 있다. 요한은 자신의 독자와 면대하여 말하려고 가까운 장래에 방문할 것을 예상하고 있다(12절).

*요한 3서
사도 요한은 요한일서에서 하나님과의 사귐에 대해 논했고 요한이서에서는 거짓 선생들과의 사귐을 금했고 요한삼서에서는 믿는 형제들간의 사귐을 격려하고 있다. 가이오에 대한 요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면서 가이오가 진리가운데 계속 행하며 복음 전하는 자들을 친절히 접대한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있다. 그러나 무리들 중 몇몇은 칭찬할 수 없었다. 예를 들어 디오드레베는 생활 속에서 사랑 대신 교만함이 가득 차서 사도 요한의 훈계의 말조차 듣지 않았다. 그러나 가이오는 정반대의 인물이었다. 요한은 이같은 부정적인 예를 들어 가이오를 격려하려 했다. 경건한 성품과 진리에 대한 충성은 결코 쉽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요한의 칭찬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칭찬을 안겨다 줄 것이다.
요한 삼서는 성경에게 가장 짧은 책이지만 매우 개인적이고도 생동감 있는 책이다. 사도 요한이 보낸 순회 선생들에 대해 정반대의 태도를 보인 두 인물의 분명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신실한 가이오는 친절하게 이들을 접대했던 반면, 믿음 없던 디오드레베는 교만과 배척으로 대했다. 그리하여 진리가운데 행하는 가이오를 칭찬해주고(1-8절) 잘못을 범하고 있는 디오드레베를 저오지하기 위해(9-14절) 이 편지를 썼다.
가이오를 칭찬함(1-8절)
장로는 사도들에게 큰 기쁨을 주는 거룩한 행실을 보여주는 사랑하는 자녀들 중 한 사람에게 글을 쓴다(1-4절). 형제들이 요한에게로 돌아와서 가이오가 저들에게 보여준 신실함, 사랑, 환대에 대해 보고한다. 사도 요한은 이러한 선한 행위를 전해 듣고 가이오가 순회 선생들과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아간 선교사들을(5-8절) 계속적으로 후원하도록 격려한다.
디오드레베를 정죄함(9-14절)
요한이 가이오와는 전혀 반대인 행위를 일삼는 한 인물을 묘사하면서 본서는 갑자기 부정적으로 변하고 있다. 디오드레베는 요한의 사도적 권세를 과감히 무시했을 뿐만 아니라 사도 요한이 보낸 순회 선생들을 접대하기를 거부했다. 디오드레베는 비록 교리적으로는 전통적인 견해를 따랐지만 그의 악한 행실은 실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신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다.
여기에 반하여 요한은 다른 전도자, 아마 본 서신서를 가이오에게 전달해준 사람으로 여겨지는 데메드리오를 추천하고 있다(12절), 마지막으로 요한은 요한이서에서 처럼 자신이 직접 그곳을 방문할 소망을 피력하고 있다(13-14절).
(요삼 1:2)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유다서
유다는 원래 구원을 주제로 쓰려고 했었다. 그러나 자신의 독자들을 억누르는 위협 때문에 복음을 파괴하려는 사람들에게로 초점을 옮겼다. 이단 교리와 배교의 위험은 하나님과 인간과의 역사 속에서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 불순종했던 이스라엘, 타락한 천사들, 소돔과 고모라,가인, 발람, 고라 등 이들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을 경험했다. 그렇다면 믿는 자는 어떻게 해야 이같은 공격에 대항할 수 있을까? 그것은 지극히 거룩한 믿음 위에 자기를 건축함(20절)으로 가능하다.
싸우라, 힘써 싸우라, 분투하라 배교가 생겨나고 거짓 선생들이 등장하며, 하나님의 진리가 공격받을 때에는 믿음을 위해 싸워야할 시간이다. 영적으로 준비된 믿는 자들만이 이 명령을 따를 수 있다. 본서 앞 부분에서 유다는 믿는 자들의 일반적인 구원에 대해 초점을 두고 있지만 점차 믿음을 위해 이들이 분투하도록 도전을 주는 방향으로 본서를 기록하고 있다. 그 위험성은 실제적인 것이었다. 이미 거짓 선생들이 교회 안으로 가만히 들어와서 하나님의 은혜를 자신들이 하고 싶은 것이면 무엇이든지 할 수 있는 무슨 면허나 되는 것처럼 바꾸어 놓은 것이다. 유다는 이런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과거 믿지 않던 이스라엘을 불순종하던 천사들을, 사악한 소돔과 고모라를 어떻게 하셨는가를 상기시켜주고 있다.이와 같이 위험을 도사리고 있음으로 성도들은 절대 경계를 늦추어서는 안된다. 보기에도 이같은 도전은 엄청나 보이지만 넘어지지 않도록 그들을 지키시는 하나님께서는 그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강하시다.
바울서신과 비바울서신 중 많은 수가 거짓 선생들의 문제점을 다루고 있거나 거의 모든 서신서들이 이러한 문제를 암시하고 있다.
유다는 가만히 들어온(4절) 거짓 선생들에 대해 가차없이 정죄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른 신약 성경의 수준을 넘고 있다. 인사말과 축도를 제외하고 나머지 전체 내용은 이 심각한 문제를 다루고 있다. 베드로후서와 야고보서를 문제를 합친 것 같은 유다서는 길이가 짧음에도 불구하고 매우 설득력이 강하다.
유다서의 목적(1-4절)
유다는 부르심을 입고 사랑을 입고 지키심을 입은 성도들에게 편지하면서 이들에게 긍휼과 평강과 사랑(1-2절), 이 세 가지 축복이 임하기를 소원하고 있다. 교회 안으로 거짓 선생들이 잠식해 들어오고 있다는 불길한 소식 때문에 유다는 구원에 대한 자신의 설명을 옆으로 제쳐둔 채, 이때에 맞는 책망과 경고(3-4절)의 말씀을 전하게 되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색욕거리로 바꾸고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배교자들의 관점에서 볼 때 성도들이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거짓 선생들의 묘사(5-16절)
계속해서 유다는 창세기에서 찾을 수 있는 하나님의 심판 3가지를 제시하면서 거짓 선생들을 낱낱이 묘사하고 있다(5-7절)
하나님께서는 (1)주의 백성 중에서 믿기를 거부한 사람들(5절), (2)타락한 천사들(6절), (3)창세기 18-19장에 묘사된 경건하지 않은 이방인들(7절)을 모두 공평하게 심판하셨다.
이성없는 동물과 마찬가지로 배교자들은 자신들이 훼방하는 것들에 의해 판결을 받고 자신들이 행하는 것으로 인해 멸망한다(8-10절). 천사장 미가엘조차도 이러한 사람들보다도 자신의 초능력을 발휘하느 문제에 있어 더 조심하고 있다. 유다는 거짓 선생들의 이단 이론보다는 이단을 가르치는 선생들에 더 초점을 두고 있는데 이는 독자들이 자세한 내용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유다는 이단 선생들을 창세기(가인)와 민수기(발람, 고라)에 나오는 하나님께로 정죄함을 받은 영적 반항자들과 비교하고 있다(11절). 12-13절에서는 애찬의 암초, 물 없는 구름, 뿌리까지 뽑힌 열매 없는 가을 나무, 바다의 거친 물결, 유리하는 별들 등 자연에서 찾을 수 있는 5가지 은유법을 사용하여 이들의 성품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있다. 이와같이 경건치 못한 자들에 대해 하나님이 심판이 있음을 외경 에녹서에 한 구절을 인용하여 단언한(14-15절) 후에 이들의 행실에 대해 열거하고 있다(16절)
거짓 선생들을 대항한 변론(17-23절)
본서는 지금까지 거짓 선생들에 대해 설명해오다가 이제는 독자들에게 화제를 돌리고 있다. 유다는 자신의 독자들에게 이러한 이단들이 나타날 것(17-19절)을 상기시키면서 이단의 공격에 대항하여 자신들을 보호하라고 격려하고 있다(20-21절). 독자들은 성숙된 믿음을 가져서 이단의 꾀임에 넘어간 사람들이나 이미 실수로 넘어진 자들을 구할 수 있어야 함을 가르친다(22-23절). 믿는 자들은 믿음을 수호할때 호전적인 마음이 아니라 자비로운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단은 미워해야 하지만 이단에 의해 희생된 사람들을 측은히 여겨야 할 것이다.
유다의 축도(24-25절)
유다는 성경에서 가장 뛰어난 표현의 축도 중 하나로 본서를 끝맺고 있다. 본 축도는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자들이 넘어지지 않도록 보호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강조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1-22장
창세기가 시작의 책이라면 요한계시록은 성취의 책이다. 본서에서는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마침내 완성되고 하나님의 거룩하신 이름이 모든 창조물 앞에서 영광을 받으신다. 비록 복음서들과 서신서에 많은 예언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만 요한계시록은 예언된 사건들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는 유일한 신약 성경이다. 본서 제목의 뜻은 벗기다, 폭로하다란 뜻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본서는 하나님의 특성과 계획을 밝혀주고 있다. 요한이 밧모섬에서 유배 생활을 하는 동안 기록한 요한계시록은 유일하게 이땅을 심판하고 재창조하며 의로 다스릴 권세를 가진 부활하신 그리스도 중심으로 환상과 상징들에 초점을 두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한 예언자에 의해 묵시 문학의 형태로 기록되었고, 예언서로 언급되어 있다
본서에서 비밀을 벗기는 3가지 중요한 전환점이 1장 19절에 나타나 있다.
네가 본것(1장), 이제 있는 일(2-3장), 장차 될일(4-22장).
네가 본 것(1장)
요한계시록은 먼저 머리말(1:1-3)이 나오고 다음으로 인사말(1:4-8)이 나온다. 계시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로부터 받은 것을 천사가 요한에게 전달해준 것이다. 본서는 성경 읽은 자들에게 축복이 약속되어 있는 유일한 책이지만(1:3) 이 책에 더하거나 제하는 자에게 저주가 또한 약속되어 있다(22:18-19). 인사말과 축도는 본서가 원래 일곱 아시아 교회들에 보내는 서신서로 쓰여졌음을 보여준다. 삼위일체 하나님에 관한 깊은 신학적인 진리(1:4-8)가 먼저 설명되어 있고 그 다음으로 놀라운 신의 현현이 1장 9-20절에 기록되어 있다. 모든 것을 자신의 권세 아래 굴복시킬 전지 전능하신 그리스도께서 바로 본서의 중심 인물이다.
이제 있는 일(2-3장)
일곱 교회들에 보내는 메시지(2-3장)는 요한이 그리스도를 환상 가운데 본 것과 연관되어 있는데 메시지에는 명령, 칭찬, 책망, 교정, 도전들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메시지들은 일곱교회의 필요에 따라 각각 조금씩 차이가 있으며 일부 주석가들은 이 메시지들 속에서 1세기 상황을 훨씬 뛰어 넘는 연관성이 있음을 발견했다. 다른 학자들은 이것을 기독교 교회들을 역사적으로 볼때 일반적인 변동의 일부 모습을 묘사한 것으로 보고 있다.
장차 될 일(4-22장)
장면이 천국으로 바뀌어 요한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여기서 아버지(그 보좌 위에 앉으신 이)와 아들(사자-어린양)이 자신들의 지위와 또 하신 일들(창조와 구속,4-5장)로 인하여 24장로들과 네 생물과 천사들의 예배를 받으신다.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구속자로서 이 땅을 심판하기에 합당하시며 심판의 책의 일곱 인을 떼실 것이다.
6-16장에 나오는 일곱 심판의 세가 사이클은 일곱 인, 일곱 나팔, 일곱 대접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섯째 인과 일곱째 인 사이, 여섯째 나팔과 일곱째 나팔 사이에 예언의 말씀이 삽입되어 있고 나팔 심판과 대접 심판 사이에 긴 내용이 삽입되어 있다. 각각 심판 중에서 일곱째 심판은 서로 유사점이 있기 때문에 세 종류의 심판은 동시에 일어나거나 겹치는 부분이 약간 있어서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는 때를 기점으로 모두 끝난다고 볼 수도 있다. 세 가지 종류의 심판들이 계속해서 연달아 일어나는 것으로 보는 다른 해석이 있는데 이 해석은 일곱째 인이 일곱 나팔이며 일곱째 나팔을 일곱 대접으로 보고 있다.
12-14장은 나팔 심판과 대접 심판 사이에 삽입된 기타 여러 가지 많은 예언들을 담고 있다. 12장에 나타난 여자는 이스라엘이 분명한데 그 여자의 아이는 그리스도이시며 용은 사탄이다.
사탄이 하늘에서 내어쫓김을 당한 후 여인을 죽이려고 찾지만 실패할 것이다.
17-18장은 재건된 로마 제국의 종교,정치 체제의 최후 몰락을 예견하고 있다. 바벨론은 이러한 체제와 도시, 두 가지 모두를 가리키기 위해 상징적으로 사용된 용어다.
그리스도께서 이땅에 다시 오실때가 되었고 천국은 하나님에 대한 찬양으로 충만하게 된다. 승리와 영광스런 모습이 재림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의 의와 함께 자기의 이름을 위해 핍박을 당했던 모든 자들을 증거하신다. 메시야적 혼인 잔치가 곧 시작되며 놀라우신 만왕의 왕이 엄청난 심판(19장)을 통해 자신의 원수들을 모두 멸망시키기 위해 나타나신다.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는 불못으로 던져지고 따르던 무리들은 죽임을 당하고 사탄은 천 년 동안 결박된다. 이 천년 동안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에게 속한 부활한 성도와 함께 이땅을 다스리게 되지만 천년이 다 끝나갈 즈음에 그리스도께 복종하기를 거절하는 많은 무리들이 태어나게 된다. 사탄은 잠시 동안 놓임을 받게 되고 불순종하는 사람들이 사탄의 도움으로 주님을 대적한다. 그러나 사탄은 영원토록 불못으로 던져지며 하늘과 땅은 사라지게 되고 그리스도를 거절했던 자들에 대해 마지막으로 백보좌 심판이 있게 된다(20장)
새 우주가 창조되는데 이때에는 죄, 죽음, 고통, 슬픔이 존재하지 않는다. 새 예루살렘(21:9-22:5)은 거대한 입방체의 모습으로 길이와 넓이, 높이가 모두 1500마일(2400km)이다. 화려한 색깔의 보석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것이며 하나님의 영광은 계속해서 빛날 것이다. 그러나 가장 위대한 것은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 앞에 거하며 그 얼굴을 볼 것이란 사실이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에 후기가 있는데 요한은 독자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속히 오시며 값없이 생명수를 받기를 원하는 모든 자들로 하여금 알파와 오메가이며 광명한 새벽별이신 주님께로 초대하고 있음을 다시 한번 확신시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