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금주의 성경통독 도우미(6/27-7/3)

Author
PBC
Date
2021-06-26 10:51
Views
69
본문: 에스라 4-10장, 느헤미야 1-13장

*에스라(4-6장): 성전 재건
에스라 4장 1-5절, 24절이 스룹바벨에 대해 초점을 맞추어 말하고 있다면 4장 6-23절은 대략 기원전 464에서 444년 사이에 있었던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 대한 반대를 말하고 있다. 이 구절들은 재건 역사에 대한 적대감의 실례를 들기 위해 여기 삽입되었을 것이다. 선지자 학개와 스가랴는 백성으로 하여금 성전 건축을 다시 시작하도록 권면하고(5:1-2) 재건 역사는 스룹바벨과 대제사장 예수아의 지도력 아래 다시 시작된다. 페르시아의 총독인 닷드내는 성전 건축에 대해 다리오왕(다리오 1세)에게 보고하고 성전 건축을 계속하려는 유대인들의 권리에 도전한다. 다리오왕은 고레스 왕의 조서를 발견했으므로 그 재선 사역을 인준했을 뿐 아니라 심지어 닷드내로 하여금 그 역사를 완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을 공급하도록 한다. 성전 재건은 기원전 515년에 끝난다.

*에스라(7-10장): 백성의 개혁
에스라의 인도 아래 더 작은 규모의 귀환이 기원전 457년에 있게 되는데 이것은 스룹바벨의 인도 아래 있었던 첫번째 귀환 후 81년 후에 있었다. 제사장 에스라는 아다사스다 왕에 의해 유대 백성을 예루살렘 성전에 드릴 헌물과 함께 데리고 가도록 권한을 부여 받는다. 하나님께서는 2천 명도 안되는 사람들을 보호하셔서 그들이 페르시아로부터의 귀한 선물들을 가지고 무사히 예루살렘에 도착하게 하신다. 레위인들은 적었지만 많은 제사장들이 스룹바벨과 또 에스라와 함께 귀환한다. 하나님께서 에스라를 사용하셔서 백성을 영적으로 또 도덕적으로 재건하게 하신다. 백성들과 제사장들이 이방 여인들과 통혼한 것을 에스라가 알게 되었을 때 그는 백성의 죄를 분명하게 인식하고 그들을 대신하여 위대한 중보기도를 드린다. 에스라는 6장과 7장 사이에 있는 58년간의 기간 동안 백성은 혼미한 영적 상태에 떨어져 있었으므로 에스라는 놀라지 않은 수 없었다. 백성은 에스라의 고백과 눈물에 신속히 반응을 보여 그들의 이방 아내들을 떠나게 하고 하나님이 율법을 따라 살기로 언약을 한다. 이 고백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반응은 위대한 부흥과 변화된 삶을 가져온다.

*느혜미야
1. 느헤미야 개요
에스라와 동시대 인물이며 페르시아 왕궁에서 왕의 술잔 드는 자(심복 중 하나)였던 느헤미야는 바벨론 포로 유배 이후 세번째이자 마지막 유대인 귀환을 이끈다. 예루살렘과 그 거민의 안녕에 대한 관심 때문에 느헤미야는 대담한 행동을 취한다. 고향으로 돌아가는 것에 대한 허락을 받은 후 느헤미야는 그의 동포들에게 일어나서 예루살렘의 무너진 성벽을 건축하자고 도전한다. 밖으로부터의 반대와 안에서 있었던 악습에도 불구하고 이 과업은 단지 52일 만에 완수 되는데 이 놀라운 업적은 심지어 이스라엘의 대적들조차 하나님의 능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인정하게 만든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그렇게 빠른 시일 내에 성벽을 재건했던 하나님의 백성들을 내적으로 부흥시키고 안으로부터 개혁시키는 일은 느헤미야의 경건한 삶과 지도력 아래서 수년 이상 걸린다.

2. 저자
이 책의 많은 부분이 느헤미야의 개인적인 회상으로 부터 비롯되었다. 보고하는 내용도 놀라운 정도로 솔직하고 생생하다.
아닥사스다 왕의 술잔 맡은 자로서 느헤미야는 커다란 책임을 감당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왕을 독살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왕이 마실 술을 미리 맛보는 그의 역활은 그에게 왕의 신뢰를 받는 신분과 왕의 충언자로서의 신임을 가져다 주었다. 기원전 444년부터 432년까지 예루살렘을 다스린 총독으로서 느헤미야는 용기와 압박받는 자들에 대한 동정, 진실성, 경건함, 그리고 이타적인 삶 등을 드러낸 인물이었다. 느헤미야는 자신의 동포들을 돕기 위해 왕궁의 호화스러움과 안락함을 포기했다. 느헤미야는 올바른 우선순위를 가지고 하나님의 역사에 큰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었고 격려할 때와 책망하기에 적절한 때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었으며 또한 기도에 강하고 하나님에게 모든 영광과 명예를 돌려드렸던 헌신된 평신도였다.

3.기록연대와 배경
에스라서와 느헤미야는 같은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에스라서 참조). 느헤미야서는 아닥사스다 1세의 통치시기에 해당된다(기원전 464-432년). 느헤미야는 아닥사스다 왕 통치 제 20년에 페르시아를 떠났다가(2:1) 제 32년에 페르시아로 돌아오며(13:6) 다시 얼마 후에 예루살렘으로 간다(13:6).
느헤미야서는 유다의 정치적 지리적 회복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처음 일곱장은 예루살렘의 성벽을 재건하는 일에 대해 묘사하는데 그 이유는 예루살렘이 유다의 영적 정치적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느헤미야서는 포로 유배로부터 많은 시간이 흐른 후 당신의 백성을 고국 땅에 다시 세우시는 하나님의 분명한 손길을 보여주기 위해 기록되었다. 느헤미야의 지도력 아래 그들은 스룹바벨의 귀환 이후 94년간이나 이루지 못했던 일을 단 52일만에 이룬다.순종하는 믿음을 통해 그들은 극복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던 반대와 장애를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4.느헤미야
느혜미야는 그와 동시대 인물이었던 에스라의 사역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에스라는 영적 부흥을가져왔던 제사장이었고 느헤미야는 물리적 정치적 재건을 일으켰을 뿐만 아니라 또한 백성의 도덕적 개혁을 이끌었던 총독이었다.
느헤미야서는 성벽의 재건(1-7장), 그리고 백성의 회복(7-13장)으로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성벽의 재건(1-7장)
자신의 동포와 예루살렘의 안녕을 위한 느헤미야의 커다란 관심은 그로 하여금 담대한 행동을 취하도록 만든다. 기원전 586년 느부갓네살에 의해 파괴되었던 예루살렘 성벽은 아닥사스다 1세가 페르시아의 권력을 잡을때 즉 기원전 464년 이후 거의 재건될 뻔 했던 것이 분명하다(스 3:6-23). 그때 일어난 반대로 인해 성벽이 다시 무너져 내렸고 그 상태로 있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느헤미야는 자기 백성을 위해 기도했으며 그 이후 성벽을 재건하는 엄청난 사역을 위해 아닥사스다 왕의 허락과 재료 확보권과 안전 보장을 얻는다.
기원전 444년 느헤미야의 인도 아래 있었던 귀환은 에스라의 귀환 13년 이후며 스룹바벨의 귀환 94년 이후였다. 느헤미야는 성벽이 무너져 있는 상태를 면밀히 답사하고는 백성들에게 일어나 건축하자고 도전한다(2:18). 성벽과 거기에 딸린 문들을 짓는 사역이 즉시 시작되었고 그들은 이 일을 자기가 사는 곳 가까운 곳의 건축을 분담하여 책임지는 형태로 감당한다.
그러자 반대가 속출했는데 처음에는 조롱이 형태였으나 사역이 놀랍게 빠른 속도로 진척되자 후에는 음모의 형태로 변했다. 느헤미야는 백성을 반으로 나누어 반은 건축을 하게 하고 반은 군사적 대비를 하게 함으로써 이 무력에 의한 위협을 극복한다. 외적 방해가 계속되고 있을 때 내적 방해 또한 표면에 드러난다. 부유층의 유대인들이 백성으로 하여금 그들의 재산을 저당잡힐 것을 강요하고 그들의 자녀를 노비로 파는 등 학대와 압제를 자행하고 있었다. 느헤미야는 다시 한번 기도와 단호한 행동이라는 두 가지 방법을 통해 이 문제를 다룬다. 또한 그는 총독직의 녹을 희생함으로써 모본을 보인다. 속임수와 비방과 음모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는 하나님을 신뢰하며 일편 단심의 마음으로 역사가 완성될때까지 밀어부친다. 과업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짧은 공기인 단지 52일 만에 완수되는데 심지어 대적들조차 이 일이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에 의해서만 가능했다는 것을 인정한다(6:16).
*백성의 회복(8-13장)
성벽의 건축이 이루어지자 백성을 영적, 도덕적으로 정결케 하고 강화하는 일일 뒤따른다. 제사장 에스라는 영적 부흥의 지도자였는데(8-10장). 이것은 13년전에 그가 이끌었던 개혁을 기억나게 한다(스 9-10장). 성벽이 완공되자 에스라는 특별히 만든 나무 단에 서서 백성들이 알아들을 수 있게 히브리어로부터 아람어로 통역을 하면서 백성에게 율법을 계속 낭독해준다.
백성은 울음과 참회의 고백과 순종과 기뻐함으로 반응한다. 레위인들과 제사장들은 위대한 기도를 통해 백성을 이끌며 당신의 백성을 위한 하나님의 지나간 구속 역사와 그분의 신실하심을 개략적으로 다시 설명해주며 또한 하나님이 거룩하심과 공의로우심과 자비하심과 사랑을 높힌다. 그리고는 백성이 이방인들과의 통혼에서 자신을 분리하기로 또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기로 하고 자신들을 드림에 따라 하나님과의 언약이 다시 갱신된다.
누가 예루살렘에 남고 누가 자신들의 기업이 되는 성읍으로 돌아갈 것인가를 결정하기 위해 제비를 뽑는다. 1/10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남아 거주하고 백성들과 제사장들이 나머지 땅을 차지한다. 악기와 합창 연주가 어루러지는 즐거운 송축 속에 예루살렘의 성벽이 주 하나님께 봉헌된다. 불행하게도 에스라에 의해 일어난 부흥은 오래가지 못했고 기원전 432년 페르시아로 돌아왔던 느헤미야는(13:6) 기원전 425년 백성을 개혁하기 위해 다시 예루살렘으로 두번째 여행을 한다. 그는 성전을 정결케 하고 안식일을 지키도록 하며 백성으로 하여금 모든 이방 아내들을 버리도록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