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금주의 성경통독 도우미(9/12-9/18)

Author
PBC
Date
2021-09-11 10:44
Views
47
본문: 전 5-12장, 아 1-8장, 사 1-15장

*전도서
1.개요
전도서는 이 지상에서의 삶의 불공평과 모순과 그리고 외견상의 불합리와 어리석음에도 불구하고 삶의 의미와 만족을 추구한 설교자(전통적으로 솔로몬인 것으로 이해되어왔다)의 치열한 탐구를 기록한 심오한 책이다. 전도서의 핵심 단어는 헛됨, 즉 하나님을 떠난 삶 가운데서
인생의 의미와 행복을 찾고자 하는 것이 얼마나 허무한 시도인가 하는 것이다. 해 아래서 보았을때 삶의 추구들은 오로지 절망으로 인도할 뿐이다. 권세, 특권, 쾌락 등 그 아무것도 하나님 자신 외에는 사람의 삶 속에 있는 하나님께서 만들어두신 빈 공간을 채울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았을 때에 삶은 의미 있고 채워질 수 있다.
하루 하루가 하나님으로 부터 온 선물로 생각될 때 회의주의와 절망은 없어질 것이다.

2.저자
솔로몬이라는 강력한 논거들이 있다.

3. 기록연대와 배경
전도서는 아마도 솔로몬의 통치 말기, 대략 기원전 935년 정도에 쓰여졌을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솔로몬이 그의 통치 초기에 융성케 했던 위대한 영화는 이미 기울기 시작했을 것이고 이스라엘이 두 왕국으로 분열되는 사건이 곧 일어날 것이었다. 유대인의 전승은 솔로몬이 아가를 젊은 날에 썼고, 중년에 잠언을 그리고 말년에 전도서를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아마도 전도서는 그의 육욕과 우상 숭배 때문에 비롯된 그의 어리석음과 시간 낭비를 후회하는 그의 후회를 표현하고 있는 것일 것이다(왕상 11장)

4.전도서 1-12장
설교자(전도자)는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서의 권세와 인기와 특권과 쾌락의 허무함과 헛됨을 통렬하게 간파한다. 헛됨이란 말은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많은 것들을 표현하기 위해 37회 사용되었다. 이땅에서의 모든 목적들과 야망들이 인생에서 추구해야 할 그 목적 자체가 될 때는 불만족과 좌절로 이끌 뿐이다.
해 아래에서의(29회 사용됨) 삶은 불공평과 불확실성과 운명의 변화와 공의의 훼손 등으로 가득차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전도서는 무신론이나 회의주의라는 답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 이 책 전반에 걸쳐 언급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전도서는 인간의 최고 선에 대한 추구는 하나님안에서 끝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인생에서의 만족은 이 세상을 넘어서는 시야를 가질 때 발견되는 것이다.
전도서는 부정적인 주제들에 대한 분석을 제공하지만 이 책은 선하고 정의롭고 절대 주권을 갖고 계신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써 삶의 공허함을 극복할 수 있다는 긍정적인 주제를 또한 우리에게 보여준다. 지혜란 외견상이 공허함과 목적이 결여에도 불구하고 인생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하나님으로부터 온 메일의 선물이며 가능한 한 많이 향유되어야 한다. 진정 우리의 이해에는 한계가 있지만 그러나 또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많은 것들이 있다.

전도서는 모든 것이 헛되다 라는 명제(논제,1:1-11), 모든 것이 헛되다는 논증(1:12-6:12), 헛됨을 안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조언(7:1-12:14).
모든 것이 헛되다는 명제(논제, 1:11)
한 구절의 서문에 이어 설교자는 그의 주제를 명시한다.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해 아래에서의 삶은 헛되고 혼란스러운 것처럼 보인다. 3-11절은 자연과 역사에서 관찰되는 끝없는 그러면서도 의미 없어 보이는 순환을 통해 이 주제를 예증한다.
모든 것이 헛되다는 명제에 대한 논증(1:12-6:12)
설교자(전도자)는 자기의 광범위한 개인적 자원들을 가지고 시험해보면서 의미와 만족을 찾는 그의 다방면의 탐구를 묘사한다. 설교자는 지혜(1:12-18)를 가지고 시작하지만 지식을 더하는 자는 근심을 더한다는 것을 발견한다. 현실에 대한 강렬한 통찰로 인해 그는 무지가 축복이라는 정반대의 상황을 경험한다. 설교자는 지혜에서 시작하여 웃음, 쾌락, 술로 옮겨가며, 다시 일, 여자, 그리고 부를 추구해 보지만 모든 것은 허무함으로 이끌 뿐이다. 그는 지혜가 어리석음보다는 훨씬 낫지만 인생의 짧음과 죽음의 보편성을 생각할 적에 두 가지 모두 허무함으로 이끄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한다. 설교자는 만족과 기쁨은 오직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음을 인정하면서 이 단락을 마친다.
이 시점에서 전도서는 설교자의 상황에서 철학적인 탐구로 옮겨가지만 결론은 똑같다. 설교자는 변하지 않는 질서와 하나님의 고정된 법칙들을 생각해본다. 시간은 짧고 이생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죽음의 허무함은 의인과 악인의 차이를 무효화시키는 것처럼 보인다. 4-5장은 사회적 관계에서의 헛됨(압제, 경쟁, 욕심, 권세)과 종교적 관계에서의 헛됨(형식주의, 공허한 기도, 서약)을 탐구하고 있다. 부가적으로 언급되는 바, 세상이 주는 것들은 만족이 아닌 실망을 산출할 뿐이다. 궁극적인 의미는 오로지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될 수 있다.
헛됨을 안고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조언(7:1-12:14)
실제적인 지혜에 관한 일련의 교훈들은 경솔함(변덕)과 쾌락 추구가 얄팍하고 어리석은 것임을 묘사하고 있다. 깨어 있는 그리고 깊이 있는 생각이 더 낫다. 지혜와 절제는 삶의 현실을 다루는 데 필요한 시야와 힘을 제공한다. 사람은 번영할 때는 그것을 즐겨야 하며 역경의 때에는 두 가지 상황 모두 하나님께서 만드셨음을 생각해야 한다. 자기와 부도덕이라는 양 극단을 피하라. 죄는 모든 사람을 공격하며 지혜는 악과 죽음을 극복하기에는 너무 짧다. 인간의 마음은 궁극적인 의미를 깨달을 수 없다. 권위에의 복종은 사람으로 하여금 불필요한 어려움을 피하게 해주지만 진정한 정의는 종종 이땅에서는 결여되어 있다. 인생의 불확실성과 죽음의 확실성은 하나님의 목적과 길을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사람은 기회가 있을때 최대한 활용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운명이 갑자기 어떻게 변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진 가장 강력한 자원인 지혜와 어리석은 자의 의미 없는 말과 노력은 대조를 이룬다. 환경이 어떻게 변할지 예측 불가능한 점에 비추어 볼때 지혜는 비탄과 불행을 최소화하기 위해 따라야 할 최선의 방책이다. 지혜은 훈련과 근면을 포함한다. 설교자는 삶을 잘 활용하라고 권면한다.
젋은 날은 너무 짧고 귀하기 때문에 어리석음과 악함으로 낭비할 수 없다. 사람은 하나님 앞에서 하루하루를 충만하게 잘 살아야 하며 인생의 이른 시기에 하나님을 인정해야 한다.
이 단락은 노년을 비유하는 절묘한 풍유로 끝나고 있다. 설교자는 선하고 훌륭한 삶은 하나님을 경외함으로서만 얻을 수 있다고 결론을 내린다. 하나님과 그분의 뜻을 진지하게 고려하지 않는 사람들은 어리석고 공허한 사람을 살 수 밖에 없는 운명이다.삶이란 모든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얻지는 못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정한 의미는 해 아래를 보지 않고 해를 넘어 한 목자(하나님)를 바라봄으로써 발견할 수 있다.

*아가서
1.개요
아가서는 솔로몬에 의해 쓰여진 사랑의 노래인데 이 노래에는 비유와 동양적인 이미지들이 풍부하다. 역사적으로 고찰한다면 아가서는 솔로몬 왕이 한 목녀를 사랑하여 구애하고 결혼하게 되는 것을 묘사하며 또 부부간의 사랑의 기쁨과 아픔을 묘사한다.
풍유적으로 아가서는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친애하는 신부로 그리고 있고 교회를 그리스도의 신부로 그리고 있다고도 볼 수 있다. 인간의 삶이 남자와 여자의 사랑 안에서 가장 깊은 만족을 발견하는 것처럼 영적인 생명(삶)도 그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교회를 위한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지고의 만족을 발견한다.
이 책은 세명의 주인공들-술람미 신부, 솔로몬 왕, 그리고 합창단(예루살렘의 딸들)-이 출연하는 드라마의 장면들처럼 구성되어 있다.

2.저자
이 책의 내적 증거는 솔로몬이 그 저자라는 전통적인 입장을 강하게 뒷받침해준다. 솔로몬이 일곱 번이나 분명하게 구체적으로 언급되고 있고 또 그는 신랑이라고 지칭되고 있다. 왕궁의 화려함과 수입된 물품들에 대한 증거들이 있다. 이 당시에 솔로몬 왕은 60명의 왕비와 80명의 비빈이 있었다. 솔로몬의 후궁실이 가장 컸을 때는 700명의 왕비들과 300명의 비빈들이 있었다.
열왕기상 4장 32-33절은 솔로몬이 1005개의 노래를 지었고 식물과 동물 세계에 대한 해박한 지식이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솔로몬이 지은 수많은 노래 중에서도 가장 걸작인 이 노래, 즉 아가서는 21종의 식물과 15종의 동물을 언급하고 있다. 아가서는 북쪽 지방과 남쪽 지방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것은 두 지장이 아직 한 왕국에 속해 있음을 말해준다.

3.기록연대와 배경
이 노래는 주로 술람미 여인의 관점에서 쓰여졌지만 실상은 솔로몬이 그 저자이며 아마도 그의 통치 초기, 대략 기원전 965년경에 쓰여졌을 것이다. 자기의 후궁으로 140명의 여인들(6:8)을 거느린 남자가 어떻게 마치 술람미 여인이 자기의 유일한 신부인 것처럼 그녀와의 사랑을 칭송할수 있는가 하는 문제가 있다.
아마도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의 관계가 그가 경험한 유일한 순수한 로맨스 였는지 모른다. 대부분 그의 결혼은 정치적인 고려에 의한 것이었다. 술람미 여인은 아무런 정치적 사회적 중용성을 갖지 않은 단지 포도원지기였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술람미 여인은 왕을 내 사랑하는 당신이라고 부르며 왕은 그의 신부를 내 사랑 이라고 부른다. 예루살렘의 딸들은 아마도 술람미 여인의 시종들이었을 것이다.

4.아가서 1-8장
솔로몬은 1005개의 노래를 썼지만 이 아름다운 사랑의 찬가는 노래 중의 노래(1:1)로서 그것들 중에서도 우뚝 서 있다. 이 노래의 위대한 문학적 가치는 이 노래가 사랑의 순결함과 아름다움과 만족을 노래해나갈때 나타나는 풍부한 비유와 동양적 이미지 들에서 드러난다.
아가서가 두 연인의 관계의 차원들(매력, 욕망, 우정, 쾌락, 연합, 분리, 충성됨, 그리고 찬미 등)을 탐구해나감에 따라 이 비유들과 이미지들은 결코 아둔하거나 조잡하지 않고 종종 아주 친밀하고 은밀하다. 전도서와 마찬가지로 이 작은 책은 쉽게 그 개요를 파악하기 어려우며 여러 제안들이 지금까지 있어왔다. 이 노래에는 화자가 갑자기 바뀐다거나 화자가 누구인지 명시되지 않았다 거나 하는 일이 많다. 사랑의 시작(1:1-5:1)이 먼저 나오고 그리고 사랑의 커짐(5:2-8:14)이 뒤따른다.

사랑의 시작(1:1-5:1)
솔로몬 왕은 슬람미 사람들의 지방에 포도원을 가지고 있었다(6:13, 8:11). 술람미 여인은 그녀의 형제들과 함께 포도원에서 일을 해야 했었는데(1:6, 8:11-12) 솔로몬 왕이 그 지역을 방문했을때 그는 그녀의 사랑을 받게 되었으며 결국 솔로몬은 그녀를 자기의 신부로 예루살렘에 있는 왕궁으로 데려간다. 술람미 여인은 야외의 포도원에서 수 시간씩 일하느라 피부가 그을렸지만 그녀는 여인중에 어여쁜 자다(1:8). 아가서는 세 사람의 주된 화자들(주인공)- 신부(술람미 여인), 왕(솔로몬), 그리고 합창단(예루살렘 여인들)-이 나오는 한 막으로 된 드라마의 장면처럼 배열되어 있다.
1-3장은 구혼 기간에 대한 일련의 회상들이다.
(1)결혼식 전 왕궁에서 신부가 애정을 갈망함(1:2-8)
(2)연회 홀에서 서로의 사랑을 표현함(1:9-2:7)
(3)봄날에 왕이 지방의 신부 집으로 방문함(2:8-17)
(4)자기의 연인에게서 떨어져 버려지는 내용의 꿈을 술람미 여인의 꿈(3:1-5)
(5)신부의 고향에서 예루살렘까지 펼쳐지는 화려한 결혼 행진(3:6-11)
솔로몬은 최상의 직유와 온유로 정수리부터 발끝까지 자기의 신부를 칭송한다(4:1-5:1). 그녀의 순결성(처녀성)은 잠근 동산(4:12)으로 비유되며 그 동산은 결혼식이 치러진 후 열린다(4:16-5:1). 신랑과 신부의 연합을 아마도 5장 1절에서 하나님께서 축하하고 계신지도 모른다.

사랑이 커짐(5:2-8:14)
결혼식이 끝나고 일정 시간이 지난 후 술람미 여인은 솔로몬이 어디 간 사이 왕궁에서 끔찍한 꿈을 꾼다(5:2). 그녀의 꿈 내용은 솔로몬이 그녀의 방 문에 왔으나 그녀가 늦게 응답을 해 솔로몬이 가버린 것이다. 꿈 속에서 그녀는 괴로워 하며 늦은 밤임에도 불구하고 그를 찾아 예루살렘을 헤맨다. 솔로몬은 돌아오자 마자 그녀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다시 한번 확신시켜주며 그녀의 아름다움을 찬미한다(6:4-7:10). 술람미 여인은 그녀의 시골 고향을 생각하기 시작하고 그녀의 연인으로 하여금 그녀와 함께 그곳으로 방문하도록 설득한다(7:11-8:4).
여행은 8장 5-7절에 있는데 그리하여 그들의 관계는 점점 더 깊어진다. 그들의 사랑은 질투나 환경에 의해 훼손될 성격이 아니었다. 그녀의 고향 방문(8:8-14)에서 술람미 여인은 어릴 때 오빠들이 그녀를 돌봐주었던 것을 회상한다(8:8-9). 그녀는 여전히 정숙하고 덕이 있었으며(8;10) 이제는 그녀의 오빠들이 복지를 생각해줄 위치에 있게 된 것이다(8:11-12). 아가서는 사랑하는 자와 사랑받는 자(연인들끼리)의 서로에 대한 사랑의 초청으로 막을 내린다(8:13-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