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금주의 성경통독 도우미(11/14-11/20)

Author
PBC
Date
2021-11-13 11:22
Views
39
본문: 단 11-12장, 호 1-14장, 욜 1-3장, 암 1-9장

*호세아 1-14장
예레미야가 몰락하는 유다 왕국을 향해 예언하도록 얼마 후 부름을 받은 것처럼 호세아는 이스라엘의 마지막 시기에 예언하도록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다. 호세아의 개인적인 비극은 이스라엘의 민족적인 비극에 대한 극명한 예화가 되었다. 이것은 한 선지자와 그의 부정한 아내(호세아와 고멜) 사이의, 그리고 여호와와 그의 불충실한 백성 사이의 일방적인 사랑과 신실함에 대한 이야기다. 고멜이 호세아의 아내가 된 것처럼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대하여 아내가 되었다. 두 경우 모두에서 신부는 창부같이 행했고 다른 연인을 따라갔다. 하지만 무조건적인 사랑은 배반을 당하여도 계속해 도망간 아내를 찾게 했다. 호세아의 경우에 있어서 이것은 그의 아내를 노예 시장에서 다시 돈주고 사오는 것을 의미했고, 이스라엘의 경우에는 정결케 하는 심판과 뒤이어 다시 약속의 땅으로 회복되는 것을 의미했다.
구원을 뜻하는 이름을 가진 호세아는 북왕국 이스라엘을 향하여 사역했다. 외부적으로 이 왕국은 번영과 성장을 누리고 있었지만 내부적으로는 도덕적 타락과 영적 간음이 백성들 사이에 팽배해 있었다. 고멜이라 이름하는 여인과 결혼하도록 지시를 받은 호세아는 자신의 가정 생활이 하나님 백성의 불충실을 정확하게 비극적으로 묘사하는 것임을 알았다. 반세기에 걸친 그의 예언 활동 기간 동안, 호세아는 다음의 세 가지 메시지를 반복해서 선포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의 죄악을 혐오하신다. 심판은 반드시 올 것이다. 하지만 하나님의 충성된 사랑은 확고하게 변함없을 것이다.
호세아는 그 가장 큰 지파의 이름을 따라 종종 에브라임이라 불려지기도 한 북왕국 이스라엘을 행해 증거했다. 1장 1절에 따르면 그는 유다의 왕들인 웃시야, 요담, 아하스, 그리고 히스기야 등이 치리하던 시기에 활동했다. 호세아가 그의 사역을 시작했을때는 여로보암 2세가 아직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던 때였다. 이것을 볼 때 같은 북왕국을 향해 활동했던 선지자 아모스보다 호세아가 더 젊었음을 알 수 있다.
호세아는 또한 남왕국에 예언했던 선지자 이사야, 미가 등과 동시대인이었다. 호세아의 긴 경력은 여로보암 2세 이후 지속되었고 스가랴로부터 호세아에 이르는 이스라엘의 여섯 왕들의 통치기간을 망라했다. 호세아는 본서를 히스기야 왕의 치세 초기에 기록했고 그의 사역은 기원전 753부터 710년까지 이르렀다. 호세아는 대략 40여년간 예언 활동을 나타내는 것이다.
호세아가 사역을 시작했을때 이스라엘은 여로보암 2세 아래서 일시적인 정치적, 경제적 번영을 누리고 있었다. 그러나 이 나라는 디글랏빌레셀 3세(기원전 745-727년)가 앗수르를 강화시킨 이후에 몰락하기 시작했다. 이스라엘의 마지막 여섯 왕들의 통치 기간은 상대적으로 짧았는데 이는 이중에 4명이 살해당했고 다섯번째 왕은 앗수르에 포로로 잡혀갔기 때문이었다.
혼돈과 몰락이 북왕국의 마지막 시기를 점철했고 그 백성들은 임박한 심판에 관한 호세아의 경고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죄악과 우상 숭배로가득 차 영적으로 무감각한 상태에 빠져 있었다.
호세아서는 두부분으로 추적할 수 있다. 음란한 아내와 신실한 남편(1-3장), 그리고 음란한 이스라엘과 신실하신 하나님(4-14장)이다.
음란한 아내와 신실한 남편(1-3장)
호세아는 고멜이라는 여인과 결혼했는데 그녀는 3명의 자녀들을 낳았고 이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표적으로서 적합한 이름을 하나님께 부여받았다. 이스르엘, 로루하마, 그리고 로암미는 각각 하나님께서 흩으시다, 긍휼을 받지 못하다, 그리고 내 백성이 아니다 라는 뜻을 가진다.
이와 유사하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 죄로 인해 심판하며 흩으실 것이다. 고멜은 호세아를 버리고 다른 연인들을 따라갔다. 그녀가 범한 죄의 심각성에도 불구하고 호세아는 그녀를 노예 시장으로부터 되사와 회복 시켰다.
음란한 이스라엘과 신실하신 하나님(4-14장)
자신의 쓰라린 경험으로 인해 호세아는 자신의 백성들이 저지른 죄악성에 대한 하나님의 슬픔을 어느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고멜을 향한 그의 신실한 사랑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죄의 수령에 빠져 회개를 촉구하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호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굳어져버렸다. 이 백성들은 하나님의 모든 계명들을 악독하게 범했으므로 그들의 죄로 인해 거룩하신 하나님의 징계를 받아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고치며 구속하기를 원하셨지만 그들은 교만과 우상 숭배에 빠져 반역했다.
9-10장은 하나님께서 내리신 재판의 판결을 기록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은 파멸을 야기시겼다. 이스라엘은 회개하기를 싫어했고 하나님의 심판은 더이상 지연될 수 없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고 공의로우셨지만 또한 사랑이 많고 은혜로운 분이시다. 하나님께서는 징계하셔야 했지만 당신의 끝없는 사랑 때문에 궁극적으로 자신의 방자한 백성들을 구원하고 회복시키실 것이다.

*요엘 1-3장
요엘은 유다에 있어던 최근의 재앙을 사용하여 그의 독자들에게 예언적 교훈을 가르쳤다. 온 땅을 뒤덮은 메뚜기 재앙은 모든 초목을 황폐하게 만들었다. 포도나무 가지는 깨끗하게 벗겨졌고 곡식밭은 황무해졌으며 과목들은 시들고 말라버렸다. 그 황폐의 정도가 너무도 심했기 때문에 심지어 하나님께 드릴 소제 조차 불가능했다. 요엘은 메뚜기 재앙을 그의 설교의 출발점으로 사용했다. 메뚜기 재앙이 혹독했지만 장차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에게 내리실 것과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북방으로부터 온 어떤 군대가 내려와 그 나라를 공격할 것이며 메뚜기가 남긴 황폐함보다 더 심하게 그 땅을 황폐화시킬 것이다. 요엘의 독자들에게 유일한 소망이란 그 무서운 날이 도래하기 전에 마음을 찢고 회개하는 일 뿐이었다.
아무런 경고 없이 재앙은 남왕국 유다를 강타했다. 불길한 검은 구름이 그 땅위에 내렸는데 그것은 끔찍한 메뚜기 재앙이었다. 땅위의 모든 푸른 초목들이 황폐하게 되는 것은 시간 문제 였다. 요아스왕 치리 기간 동안(기원전 835-796년) 하나님의 대변자로 활동했던 요엘은 이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메시지를 선포했다.
메뚜기 재앙이 비록 죄에 대한 끔찍한 심판이었지만 주의 날에 있을 하나님의 심판은 이 재앙에 비교하면 아무것도 아닐 것이다. 그날에는 하나님께서 모든 대적들을 멸하실 것이지만 그분께 충성되이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축복을 주실 것이다.
요엘서는 연대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전혀 없기 때문에 그 기록 연대를 확실하게 추정하기는 어렵다. 요엘서의 기록연대는 대략 기원전 835년으로 여겨진다. 요엘이 우상숭배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것으로 미루어 요엘서는 여호야다가 제사장이던 요아스 왕 통치 초기에 바알 숭배와 다른 형태의 우상 숭배가 제거된 후에 기록 되었을 것이다. 유다의 초기 선지자로서 요엘은 아마도 이스라엘의 엘리사와 동시대인이었을 것이다.
요엘서의 중심 주제는 주의 날에 대한 회상과 예상이다. 최근에 유다에서 발생한 흉칙한 메뚜기 재앙은 하나님께서 장차 공의를 확립하시기 위해 인간의 역사에 직접 개입하실 심판의 날을 잘 묘사해준다. 그날은 이스라엘과 열국들에 대해 유레 없는 심판의 날이 될 것이지만 주님을 의지하는 모든 자들에 대한 놀라운 축복과 구원이 절정을 이룰 것이다(2:32).
요엘서는 유다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하는 마음으로 겸손하게 하나님께로 돌아옴으로 징계 대신 하나님의 축복을 받도록 경고하기 위해 기록되었다. 그들이 만일 하나님의 자비로운 회개에서의 요청을 계속 거부한다면 심판은 불가피할 것이다. 요엘은 자연과 열방들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적인 능력을 강조했고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자연 현상을 사용하여 사람들의 주목을 이끄시는가를 보여 주셨다.
요엘서는 분량이 비록 짧지만 다가오는 주의 날 이라는 중요한 주제를 발전시키고 있다. 그날은 하나님께서 반역한 백성과 나라들에 대한 무서운 심판의 날이다. 하지만 그날은 또한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 위에 장차 축복이 주어지는 날이기도 하다.
재앙이라는 주제는 본서 전체를 통해 나타나지만 소망의 약속들 또한 임박한 심판의 선포들 중간 여기저기에 나타난다.
요엘서의 기본 구조는 다음과 같다. 주의 날을 회상함(1:1-20), 그리고주의 날을 예상함(2:1-3:21).
주의 날을 회상함(1:1-20)
요엘은 그 땅을 황폐시킨 최근의 메뚜기 재앙을 설명하면서 요엘서를 시작한다. 하늘을 새까맣게 덮은 이 곤충들은 포도나무와 과실나무들을 벗겨버렸고 곡식 추수를 망쳐버렸다. 경제는 가뭄으로 인해 극심한 정체 상태에 머물렀고 백성들은 절박한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주의 날을 예상함(2:1-3:21)
요엘은 자연 재해를 효과적 사용하여 장차 임할 더 극심한 심판을 잘 묘사했다. 끔찍한 주의 날에 비교하면 메뚜기로 인한 파괴는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 땅은 떼로 몰려오는 군대의 침략을 받을 것이다. 메뚜기들처럼 그들은 신속하며 탐욕스러울 것이다. 이 군대에 의한 황폐함은 끔찍할 것이다(2:11). 그렇다 할지라도 백성들이 이 재앙으로부터 돌이키기에 너무 늦은 것은 아니었다. 예언의 경고는 그들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이끌기 위해 선포되었다 (2:12).
하지만 하나님의 관대한 호의조차도 소귀에 경읽기가 되고 말았다.
궁극적으로 팟종이, 메뚜기, 늣, 황중들이 더 흉악한 모양으로 다시 올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심판 이후에 물질적, 영적 축복이 뒤따를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이런 놀라운 약속들 뒤에는 마지막 때에 판결의 골짜기에서 있을 모든 나라들을 향한 심판(3:14)이 장엄하게 묘사되었다. 각 나라들은 자신에게 반역한 자들을 심판하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변론해야 할 것이다.하나님 한 분만이 오로지 역사의 흐름을 통제하실 수 있다(3:17). 요엘은 충성스런 유다의 남은 자들을 위한 왕국의 축복들로 요엘서를 끝맺고 있다(3:20).
요엘서는 절망가운데 소망의 메시지를 전해 주었고 마침내 그 말씀이 이루어졌다.
(욜 2:28-29) 그런 다음에, 내가 모든 사람에게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딸은 예언을 하고, 노인들은 꿈을 꾸고, 젊은이들은 환상을 볼 것이다. 그 때가 되면, 종들에게까지도 남녀를 가리지 않고 나의 영을 부어 주겠다.

*아모스 1-9장
아모스는 이스라엘이 국가적인 낙관주의에 빠져 있던 시기에 예언했다. 사업들이 번창하고 영토가 확장되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탐욕과 불의가 창궐했고 진정한 예배는 위선적인 종교 행위들로 대처되었다. 이것은 거짓된 안전감을 주었고 하나님의 징계하시는 손길에 대해 점점 더 무감각하게 만들었다. 기근, 가뭄, 재앙, 죽음, 파괴 등 그 어떤 것도 이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로 무릎을 꿇게 하지 못했다. 전직 농부였던 선지자 아모스는 단호하게 죄를 꾸짖었고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을 생생하게 그려줌으로써 백성들을 회개케 하도록 촉구하고자 했다.
이 나라는 썩은 과일이 담긴 바구니 같이, 그 위선과 영적 무관심으로 인해 심판받기에 가장 적합했다.
아모스라는 이름은 오직 본서에서만 나타난다. 자신의 배경에 대해 나는 선지자가 아니며 선지자의 아들도 아니요 나는 목자요 뽕나무를 배양하는 자(7:14)라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하나님께 붙들린바 되고 이스라엘을 향해 자신의 예언 사역의 짐을 짊어지도록 사명을 받았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유다의 드고아라는 시골 지역 출신이다. 그곳에서 그는 질이 좋은 털을 만들어내는 특이한 종의 작은 양떼들을 치며 살았다. 무화과를 재배했던 그는 열매 안에 갇힌 벌레들이 도망하도록 익기 전에 그 과일에 구멍을 뚫어야 했다. 아모스는 훈련된 삶을 살았고 광야에 대한 그의 지식은 메시지에 잘 나타나있다. 아모스는 시골 출신이지만 성경을 잘 교육받았다. 도덕성과 정의에 대한 그의 예민함은 분명했지만 이스라엘의 영적 상황에 대한 그의 객관적인 평가는 잘 받아들여지지 안았다. 그 이유는 그가 유다 출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이스라엘 왕의 거주지이며 우상 숭배의 중심지였던 벧엘에서 자신의 메시지를 증거했다. 북왕국 백성들의 탐욕과 불의, 그리고 자기의에 대한 그의 정면의 도전 때문에 그의 메시지는 환영받지 못했다.
아모스는 유다왕 웃시야 시대 곧 이스라엘 왕 요아스의 아들 여로보암의 시대의 지진 전 이년에 예언했다(1:1). 웃시야는 기원전 767년터 739년까지 치리했고 여로보암 2세는 기원전 782년부터 753년까지 치리했으므로 767년부터 753년까지 두 왕의 통치 기간이 중복되었다.
약 2백년 후에 스가랴는 웃시야 통치 때 있었던 이 지진에 대해 언급했다(슥 14:5).
아모스는 기원전 722년 앗수르의 침략을 예견했고(7:11) 본서를 기록할 당시에 여로보암 2세가 아직 죽지 않았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므로 아모스는 약 기원전 755년경에 벧엘에서 예언 했다고 볼 수 있다. 천문학적인 계산에 따르면 기원전 763년 6월 15일에 이스라엘에서 일식이 발생했다. 이 사건은 아마도 아모스의 메시지를 들었던 사람들의 마음에 신선한 충격이 되었을 것이다(8:9). 아모스는 오바댜, 요엘, 요나의 시기 이후 그리고 호세아, 미가, 이사야의 시기 이전에 사역했다. 이 당시는 웃시야가 경제적으로 번영하며 군사적으로 막강했던 유다를 통치하고 있었다. 그는 예루살렘을더욱 요새화하고 블레셋, 암몬, 그리고 에돔 사람들을 정복했다.
북쪽에서는 유능한 여로보암 2세가 이스라엘을 통치하고 있었다. 경제적, 군사적인 상황은 거의 이상적인 수준이었지만 이러한 번영은 단지 백성들의 물질주의, 부도덕, 그리고 불의만을 증가시켰다. 이시기 동안에 앗수르, 바벨론, 수리아, 그리고 애굽은 상대적으로 약세였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모스가 예언한 재앙들이 다가오리라는 것을 상상하는것은 매우 어려웠다. 하지만 30년이 채 지나기 전에 이스라엘의 멸망은 찾아온다.
북왕국 이스라엘에 대한 임박한 최후라는 아모스의 메시지는 그 백성들에게 이상하게 들렸을 것이다. 북왕국에서는 외적인 상황들이 더 나아질 수 없을 정도로 호경기였다. 사업이 부흥하고, 영토가 확장되며, 낙관주의가 만연했다. 하지만 내부적인 상황은 불의, 탐욕, 위선, 착취, 교만 등 더이상은 악화될 수 없을 정도로 타락했다. 놀랄 것도 없이 이스라엘의 죄악과 타락상에 대한 아모스의 진솔하고 거침없는 메시지는 제대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아모스는 네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1) 여덟가지 예언(1:1-2:16) (2) 세 가지 설교(3:1-6:14)
(3) 다섯 가지 환상(7:1-9:10) (4) 다섯 가지 약속(9:11-15)
여덟 가지 예언(1:1-2:16)
아모스는 자신의 고향 유다를 떠나 이스라엘에게 심판의 준엄한 메시지를 전파해야 하는 내키지 않는 사명을 위해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다. 1-2장에 나타난 그의 여덟 가지의 예언들은 각각 “...의 서너가지 죄로 인하여”로 시작하고 있다. 네번째 죄는 마지막 지푸라기와도 같았다.
여덟 나라들은 각각 죄악으로 가득 찼다. 아모스는 이스라엘을 둘러싼 나라들로부터 시작하여 마지막으로 이스라엘을 향하여 점차적으로 재앙의 메시지를 증거했다. 하나님께서는 일곱 차례나 심판의 한 상징으로서 “내가 불을 보내리라”고 선포하셨다.
세 가지 설교(3:1-6:14)
이 장들에서 아모스는 세 편의 설교를 전했는데 각 설교는 “이 말씀을 들으라”라는 문구로 시작하고 있다. 첫 번째 설교(3장)는 이스라엘의 죄악으로 인한 심판의 일반적인 선포이며, 두 번째 설교(4장)는 백성들의 잘못들을 드러내 보여주며 그들을 당신에게로 돌이키기 위한 하나님의 징계 방법을 설명해주고 있다. 다섯 번이나 하나님께서는 “그러나 너희가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했느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세번째 설교(5-6장)에서는 이스라엘 민족의 죄악들이 열거되고 있으며 백성들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촉구하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정직과 정의, 긍휼을 싫어했고 여호와께 돌아오기를 거절한 까닭에 포로로 잡혀가는 결과를 당하게 되었다. 그들이 비록 사치에 빠져 거만하게 지냈지만 그들의 번영은 갑작스러운 종국을 보게 될 것이다.
다섯 가지 환상(7:1-9:10)
아모스의 세 설교 뒤에는 북왕국을 향해 다가올 심판에 관한 다섯 가지의 환상들이 뒤따르고 있다. 처음 두 메뚜기와 불의 심판은 아모스의 중보기도 덕분에 발생하지 않았다. 세번째, 다림줄의 환상은 아모스에서 유일하게 그 설명이 덧붙여져 있다. 벧엘의 제사장이었던 아먀샤는 아모스가 유다로 되돌아가기를 원했다. 네번째 환상은 이스라엘을 심판받기에 적합한, 썩어가는 실과 광주리로 묘사하고 있다. 다섯번째 환상은 이스라엘의 피할 수 없는 심판에 대해 냉혹하게 묘사하고 있다.
다섯 가지 약속(9:11-15)
아모스는 경고, 설교, 환상등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주제를 강력하게 증거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저주가 아니라 위로의 말로 자신의 책을 끝맺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계보를 다시 세우며 그 땅을 새롭게 하고 그 백성들을 회복시킬 것을 약속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