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금주의 성경통독 도우미(11/28-12/4)

Author
PBC
Date
2021-11-27 10:55
Views
53
본문: 슥 1-14장 , 말 1-4장, 고전 1-14장

*슥 1-14장
성전을 재건하는 일은 중간 정도만 진행된 수십 년 이상이나 그냥 그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스가랴는 하나님에 의해 보냄을 받아 백성들로 하여금 완수되지 못한 책임을 완수하라고 격려한다. 강한 책망의 말로 그들을 권면하기보다 스가랴는 그들에게 미래에 성전이 가질 중요성을 상기시킴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행동하도록 격려하고 있다. 성전을 건축되어져야만 하는데 왜냐하면 메시야의 영광이 성전에 거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의 축복은 현재의 순종에 달려 있었다. 백성은 단지 건축물을 짓고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건설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을 동기로 삼고 그들은 전심을 다하는 태도로 재건 역사에 임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그들의 메시야가 곧 오실 것이므로
스갸랴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신다 또는 하나님께서 기억하셨다 라는 뜻이다.
스가랴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을 위한 미래 계획을 묘사하기 위해 여덟 환상과 네 메시지 그리고 두 후렴 부분들을 연속으로 전개한다. 처음 여덟 장은 신실한 남은 자들이 성전을 재건하도록 격려하기 위해 쓰여졌고 마지막 여섯 장은 성전 완성 뒤에 이스라엘의 오실 메시야를 예기하면서 기록되었다. 스가랴서는 통치에서 메시야 통치로, 핍박에서 평화로, 그리고 부정함에서 거룩함이라는 주제로 옮겨지고 있다. 이책은 여덟 환상들(1-6장)과 네 메시지(7-8장), 그리고 두 후렴(9-14장)으로 나누어질 수 있다.
여덟 환상들(1-6장)
스가랴서는 백성에게-선지자들의 경고를 무시하고 거절했던 그들의 선조들과는 다르게-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호소하는 것으로 시작한다(1:1-6). 몇 달 후 분명 어느 고뇌의 밤에(기원전 519년 2월 15일, 1:7) 스가랴는 시리즈로 여덟 가지의 환상을 보게 된다. 그와 예기했던 천사는 그 환상들을 해석해주지만 어떤 상징들을 설명되지 않는다.
환상들은 두번의 강림때에 메시야의 사역에 대한 내용을 혼합하고 있는데 다른 예언서들의 경우처럼 스가랴는 사이에 끼어 있는 골짜기를 보지 못하고 하나님 계획을 봉우리들만을 본다. 처음의 다섯 가지 환상들은 위로의 환상들이고 나머지 세 가지의 환상들은 심판의 환상들이다.
(1)화석류 나무 사이의 말탄 자들-하나님께서는 시온과 그 백성을 회복하실 것이다(1:7-17).
(2)네 뿔과 공장들-이스라엘을 압제한 자들은 심판받을 것이다(1:18-21.)
(3)척량줄을 가진 사람-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보호하시고 영화롭게 하실 것이다(2:1-13).
(4)대제사장 여호수아가 정결케 됨-이스라엘이 장차 오신 순(Branch)에 의해 정결케 되고 회복될 것이다(3:1-10).
(5)순금등대-하나님의 영이 스룹바벨과 여호수아에게 능력을 주실 것이다(4:1-14).
(6)날아가는 두루마리-개인의 죄가 심판받을 것이다(5:1-4).
(7)뒤주 속의 여인-민족적 죄악이 제거될 것이다(5:5-11).
(8)네 병거-하나님의 심판이 열방에 임할 것이다(6:1-8).
여호수아에게 면류관을 씌우는 사건(6:9-15)은 왕이시고 제사장(복합적인 면류관)이 되실 순(가지, 메시야를 상징)의 오심을 예기하는 것이다.
네 메세지(7-8장)
금식에 대한 질문(7:1-3)에 대한 답으로 하나님께서는 스가랴에게 이어지는 네 개의 메시지를 주신다.
(1)공허한 형식주의에 대한 책망(7:4-7).
(2)과거의 불손종을 상기시킴(7:8-14).
(3)이스라엘의 회복과 위로(8:1-17).
(4)왕국에서의 기쁨과 회복(8:18-23).
두 후렴(9-14장)
첫 번째 후렴(9-11장)은 메시야의 초림에 대해 그리고 이스라엘의 오시는 왕으로서 그가 거절 받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알렉산더 대왕은 이스라엘의 주변 국가들은 정복할 것이지만 전정한 왕(메시야, 9:9-10)을 위해 보존되어야 할 예루살렘은 손상시키지 않고 남겨둘 것이다(9:1-8). 이스라엘은 헬라 제국을 대항해 성공적인 업적을 남길 것이다(마카비의 난, 9:11-17). 그리고 비록 그들이 후에 흩어지겠지만 메시냐는 그들을 축복하고 다시 그들을 돌아오게 할 것이다(10:1-11:3). 이스라엘은 자기의 목자요 왕이신 이를 거부하고 거짓 목자들에 의해 곁길로 갈 것이다(11:4-17). 두번째 후렴(12-14장)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그가 영접받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 열방들이 예루살렘을 공격할 것이지만 메시야가 오셔서 그 백성을 구원할 것이다(12장). 그들은 부정과 잘못된 것들로부터 깨끗케 함을 받을 것이고(13장) 메시야가 권능 중에 오셔서 열방을 심판하고 예루살렘에서 온 땅을 다스리실 것이다(14장).

*말라기 1-4장
말라기는 구약 성경 예언의 마감과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 사이에 있었던 400년 간의 침묵 기간의 시작이 된다. 포로 생활을 경험하고도 거의 배운 것이 없는듯, 얼마 후에 사람들은 그들의 포로 생활의 이유가 되었던 탐욕, 우상 숭배, 이방인들과 결혼, 가난한 자들에 대한 학대, 무감각한 마음 등과 같은 죄들을 범하게 되었다. 질문과 대답의 형태로 말라기 선지자는 유다의 완악한 마음을 지적하고 그러한 죄를 짓는 모든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이 저주를 선포한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요 1:29) 이라는 희망 찬 메시지를 전파하는 것은 엘리야의 권능과 심령으로 나타날 약속된 선구자인 침례 요한을 위해 남겨진 것이었다.
학개와 스가랴의 위대한 예언들은 아직 성취되지 않았으며 이스라엘 백성들은 점점 환멸을 느끼게 되었고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신앙이 알아차릴 수 없을 정도로 조금씩 냉소적으로 타락함에 따라 하나님의 섭리를 의심했다.
내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종국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과연 가치 있는 일인지를 의심했으며 이러한 태도는 외적으로 기계적인 의식의 준수와 공허한 의식과 십일조와 헌물에 대한 불이행과 하나님의 도덕률과 혹은 의식법에 대한 지독한 무관심으로 나타났다. 제사장들은 부패했으며 그들의 행실은 악했다. 그러나 그들은 영적으로 너무 무감각해져서 있어서 그들이 왜 하나님으로부터 축복을 받지 못하는지 의아해 했다.
질문과 답변이라는 형태의 탐구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하나님께서는 돌같이 단단한 그들의 마음을 뚫기를 원하셨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고소는 부정된다. 주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나이까?, 어떻게 우리가 언약을 욕되게 했나이까?, 우리가 어떻게 여호와를 괴로우시게 했나이까?, 우리가 무슨 말로 주를 대적했나이까?
실제적으로 백성들은 “자 봐라, 이건 그렇게 나쁜 게 아니야” 라고 빈정거린 셈이었다. 그러나 그들의 반역은 노골적인 것이 아니라 내재된 것이었다. 하나님에 대한 그들의 개념이 점점 흐릿해져감에 따라 결과적으로 물질주의와 형식주의는 고착화된 특성이 되었다.
이러한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당신의 백성들을 사랑하셨으며 하나님께로 겸손히 돌아오려는 사람들에게 다시 한번 더 당신의 은혜를 펼치신다. 그리고 말라기 선지자는 민족의 특권(1:1-5), 민족의 타락(1:6-3;15), 민족을 향한 약속(3:16-4:16)에 대해 탐색한다.
민족의 특권(1:1-5)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눈이 먼 상태에 있었다. 현재의 문제에 빠져서 그들은 과거에 있었던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역사를 잊어버렸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에서(에돔)와 야곱(이스라엘)의 운명을 대조하심으로써 그들에 대한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상기시키셨다.
민족의 타락(1:6-3:15)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한 모든 존경을 잃어버렸으며 그들의 탐욕을 위해 병들거나 흠 있는 짐승들을 제단에 바쳤다. 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보다는 페르시아 통치자들을 더 중요시했다. 게다가 하나님께서는 그들에 대한 당신의 축복을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그들의 불순종과 성실치 못한 그들의 가르침 때문에 보류하고 계셨다.
백성들은 이방 여인들과 결혼하기 위해 젊어서 취한 아내와 이혼하는 배신 행위로 인해 기소된다.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그들의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속에서 그들은 메시야의 오심에 대한 약속을 받게 되지만 또한 메시야가 가져오실 심판에 대한 경고도 받았다.
백성들은 하나님께 속한 십일조와 헌물을 도덕질했으나 만약 그들이 하나님을 첫 자리에 모신다면 하나님께서는 풍족하게 축복하실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마지막 문제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오만한 도전이었는데 이러한 도전에 대한 대답은 이 책의 나머지 부분에 나타난다.
민족을 향한 약속(3:16-4:6)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에게 악인들이 심판 받고 하나님을 경외한 사람들을 축복받을 때가 오고 있다고 확신시키신다. 주님의 날이 오면 “하나님을 섬긴 것이 허사가 아니었음”이 드러날 것이다.
말라기는 저주라는 쓰디쓴 단어와 함께 끝난다. 비록 종국적으로 백성들은 우상 숭배라는 병에서 고침을 받지만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영적인 진보는 거의 없었다. 죄는 만연했으며 오실 메시야에 대한 필요성은 그 어느때보다 컸다.

*고린도전서 1-14장
1세기 당시 고린도는 남부 헬라의 주요한 상업 중심지였다. 또 이 도시는 음란과 이교도주의로 악명이 높았다. 그러나 이러한 거대한 장애물에도 불구하고 바울은 2차 전도 여행 때 그곳에서 교회를 세울 수 있었다(행 18:1-17). 재능이 있고 성장하는 곳이었지만 교회는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교리적이고 실질적인 집단적이고 개인적인 것 등 여러 문제들로 시달렸다. 바울은 이러한 문제들 중 일부를 다루면서 고린도 교인들이 안고 있는 중대한 문제에 답하기 위해 고린도전서를 쓰고 있다.
바울시대 헬라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였던 고린도는 세계적으로 상업, 타락한 문화, 그리고 우상 숭배로 떠들썩한 중심지였다. 고린도전서는 이교도 사회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교회의 문제, 압박, 그리고 어려움을 나타내고 있다. 바울은 당파, 소송, 음란, 문제가 되는 습관들, 주의 만찬과 영적 은사의 오용 등 고린도 교회의 삶의 스타일이 안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쓰고 있다. 징계의 말에 더하여 바울은 고린도 신자들이 제기한 문제들에 대한 답으로 조언도 쓰고 있다.
고린도전서는 사도 바울이 기록했으며 주후 56년이나 57년 즉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시기에 기록되었다. 바울은 고린도에서 18개월을 머무는 동안 교회를 세웠었다(주후 51-52).
사도 바울이 알고 있는 고린도는 그리스도 이전 세기에 로마의 식민지로 건립된 도시였다. 이 도시는 아가야 지방의 로마 영토에서, 에게 해와 아드리아 해 사이의 좁은 해협에 인접한 두 항구를 가진 전략적인 위치에 있었다. 고린도의 위치는 이 도시를 동에서 서로 지나가는 무역 경로의 중심지로 만들었으며 번영의 결과로서 사치와 부도덕이 야기 되었다. “고린도 사람처럼 살기”는 철저히 부도덕하게 산다는 의미였다. 고린도에 위치한 많은 이교도 사원들은 성전 매춘을 통해 이 같은 방종한 삶의 방식을 조장하였다.
바울과 다른 사람들의 전도 노력으로 고린도에 교회가 세워졌지만 고린도의 속성을 교회에서 떨쳐내기에는 어려움이 따른다는 것을 바울은 알았다. 고린도의 이교도적 생활 태도는 그 부패한 도시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모든 종류의 문제들이 그들을 오염시켰다.
이 교훈적인 편지에서 바울은 당파, 음란, 소송, 이기심, 성만찬과 영적 은사의 오용, 그리고 부활을 부정하는 문제들을 강력히 다루면서 자신의 사도적 권세를 강하게 행사한다. 관심을 끌었던 문제들을 연속적으로 다루는 바울의 접근 방법은 아주 논리 정연하다.
바울은 또한 고린도교인들이 제기한 질문과 내용에 대해 자신의 관점을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는 도덕적인 문구, ..에 대하여는 을 사용함으로써 그 화제들을 직접 언급하고 있다.
고린도전서는 세 부분으로 나누어진다.
분쟁에 대한 글로에의 보고에 대한 답(1-4장)
고린도인들 사이에는 바울, 아볼로, 그리고 베드로를 중심으로 한 인물 숭배로 분열과 거짓된 자랑거리가 생겼다(1장). 그들은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한 것은 그들의 지혜나 총명함 때문이 아니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지혜는 인간의 그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복음의 진리는 영적으로 이해되는 것이다(2장). 고린도 성도들 사이에 있었던 당파는 그들의 영적 미성숙을 의미한다(3장). 그들은 단지 그리스도의 종인 인간 지도자들에게서 자랑거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찾아야 한다(4장)
음행의 보고에 대한 답(5-6장)
바울이 말하고 있는 다음 문제들은 교회 성도와 그의 계모 사이에 근친 상간의 대해서다(5장). 고린도인들은 이 문제에 대해 교회 차원에서 어떠한 징계로 하지 않았고 바울은 하나님 앞에 범죄한 그 사람이 회개할 때까지 교회의 교제권에서 추방해야 한다고 명하고 있다. 다른 안따까운 소식은 믿는 자가 다른 믿는 자를 상대로 시의 재판소에 송사한 일이다(6:1-8). 그들은 그리스도인 사회에서 그들의 문제를 재판에 회부하는 법에 대해 배워야 한다. 바울은 이 부분을 일반적인 부도덕함에 대한 경고로 마치고 있다(6:9-20).
질문에 대한 답(7-16장)
여기에서 사도 바울은 고린도인들이 제기한 곤란한 질문들에 대해 권세 있는 답을 주고 있다.
그의 첫번째 조언은 결혼, 독신, 이혼 그리고 재혼의 문제에 대한 것들이다(7장). 그리고 다음 세 장은 우상의 제물에 대한 문제와 관련이 있다(8:1-11:1). 바울은 자신의 삶을 예로 들어가며 그리스도인들의 자유와 사랑의 율법에 대해 두 가지 원리를 제시한 뒤, 신자들이 어 연약한 형제들을 위해 자신의 자유를 때때로 제한해야 한다고 결론 짓는다.
그 다음으로 바울 사도는 주의 만찬을 적절하지 않게 지키는 것과 영적 은사의 이기적인 사용을 포함한 공중 예배 문제로 들어간다(11:2-14:40). 은사는 전체 교회를 세우기 위해 사랑 안에서 사용해야 한다. 고린도인들은 부활에 대해 문제를 갖고 있었고 바울은 그것을 교정하기 위한 내용도 적고 있다(15장). 부활에 대해 역사적이고도 신학적으로 변호하면서 바울은 부활한 몸의 본질에 대한 가르침도 포함시키고 있다. 헬라 사상은 부활한 몸의 개념을 경멸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린도인들은 아마 이 문제로 고민하고 있었던 것 같다. 이 서신서는 예루살렘의 성도들을 위한 연보에 대한 바울의 지시와(16:1-4), 여러 권고들, 그리고 인사들로 끝맺고 있다(16:5-24).